오피니언 고영경의 마켓 나우

태국 사로잡은 수퍼앱 라인, 보내기 아깝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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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고영경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디지털통상 연구교수

고영경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디지털통상 연구교수

라인이 화제다. 라인은 네이버에 뿌리를 둔 글로벌 메신저 서비스다. ‘글로벌’에는 동남아 시장의 라인 월 이용자 2억명이 포함된다. 네이버는 라인을 기반으로 한 해외사업 전부를 내려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변곡점을 맞았다. 라인은 네이버가 이룩한 대표적인 성공 스토리 중 하나다. 라인은 우리나라 테크 기업이 플랫폼 비즈니스로 해외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사례이기도 하다.

라인은 일본과 대만, 태국에서 가장 많이 쓰는 메신저이다. 2013년 태국에 진출한 라인은 국민 필수 앱으로 등극했다. 메신저 앱은 어느 국가에서나 1위만 살아남는다. 나홀로가 아니라 주변 사람도 다 같이 사용해야 하는 특성 때문이다. 그만큼 후발 주자가 1등으로 올라서기 어렵다. 그 어려운 일을 라인이 1년 만에 해냈다.

마켓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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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은 단순히 태국의 메신저 서비스만 접수한 것이 아니다. 이곳 사람들은 라인에서 뉴스와 드라마를 보고, 웹툰과 게임·음악을 즐기며, 선물을 구매하고, 음식배달을 시키고, 택시를 부르고, 라인페이로 결제할 수 있다. 이처럼 라인은 태국 사람들의 온종일 생활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수퍼앱은 이렇게 다양한 서비스를 아우르는 플랫폼이다. 한국에서는 카카오와 네이버가 수퍼앱에 해당한다.

후발주자 라인은 어떻게 태국의 수퍼앱이 되었을까. 라인은 ‘컬처라이제이션(culturization, 문화화)’라고 명명한 현지화 전략에서 답을 찾았다. 이용자 확보를 위해 라인이 선택한 진입 전략은 이모티콘(라인은 ‘스티커’라 부른다)과 게임이었다. 만화와 귀여운 캐릭터를 좋아하는 이곳 문화에서 라인 스티커는 곧바로 화제를 모았고, 이용자들이 직접 만든 스티커를 판매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스 마켓(Creators Market)이 열렸다. 또 라인을 통해 소개한 게임들인 ‘쿠키런’과 ‘모두의 마블’(태국 게임명 Line Let’s Get Rich)은 단숨에 태국 1위 자리에 올랐다. 또 태국인들이 TV 프로그램을 모바일로 시청한다는 점에 착안해 라인TV를 출시했고, 미디어사와 공동제작한 콘텐트를 독점으로 제공하면서 더 많은 이용자를 끌어모았다. 태국 사람들의 생활패턴과 감성을 파악해 겨냥한 서비스와 마케팅의 승리였다. 취향 저격 아이디어는 모두 태국인 직원들에게서 나왔다. 이것이 문화를 이해한 현지화, 컬처라이제이션이다.

현재 태국에서 라인은 수퍼앱으로, 동남아 전역에서는 콘텐트 플랫폼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 시장에서 플랫폼으로 도전한 많은 기업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한국 기술로 해외 플랫폼을 만들기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라인이 쌓은 노하우와 축적된 기술, 문화화 전략을 이대로 보내기 아까운 이유이다.

고영경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디지털통상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