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의·합의보다 응징이 우선…입법부 정신세계는 처벌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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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호 05면

29일 막 내리는 21대 국회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시절 본지와 인터뷰 중인 박상훈 박사. 임현동 기자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시절 본지와 인터뷰 중인 박상훈 박사. 임현동 기자

정치학자 박상훈은 정치 현장 가까이에서 민주정치에 대해 꾸준히 강의하고 글을 써왔다. 문재인 정부 때의 『청와대 정부』, 최근 팬덤 정치현상을 다룬 『혐오하는 민주주의』가 결실의 일부다.

얼마 전까지 최근 5년간 국회(미래연구원) 안에서 일종의 내부자의 시선으로 여의도를 관찰했다. 20대 국회 마지막 1년과 21대 4년이다. ‘더 많은 입법이 우리 국회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만들어진 당원:우리는 어떻게 1000만 당원을 가진 나라가 되었나’ ‘‘국가’와 ‘국민’을 줄여 써야 할 국회’ 등의 보고서를 냈다. 23일 그와 통화했다. 의회민주주의자이기도 한 그는 현 국회에 대한 우려가 컸다. 다음은 그의 진단을 요약한 글이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기능하는 방법은 완전히 다르다. 행정부는 수직적인 위계구조고, 사법부는 합의부도 있긴 하지만 전문가주의다. 입법부는 서로 갈등하는 시민대표 집단들 간에 계속 경쟁하고 협의하고 경합하면서 간헐적으로 평화협정을 맺어서 일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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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체제 아래에서 그간 평화협정을 이끌어냈던 방법이 있다. 큰 갈등이 있다 하더라도 당의 지도부와 중진, 의회 내 의장을 비롯한 수장들이 지혜를 발휘해 막혔던 정국을 풀어가는 걸 반복하는 것이다. 국회의 불문율·선례·용례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20대 국회 전반기까지 이게 작동했지만, 후반기부터 달라졌다. 촛불집회 후다. 밖에선 국회를 해산하더라도 새로 뽑힌 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실현돼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졌다. 30년 유지되던 불문율과 선례·용례가 엄청 깨졌다. 앞에선 다툼하더라도 결국엔 협의주의, 합의주의에 가깝게 운영했던 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으로 바뀌었다.

상임위에서 전례 없이 기립 표결을 하기 시작했다. 법안소위에선 여야와 이해당사자, 정부 부처가 완전하게 합의하지 않으면 잘 진행되지 않았는데 여기에서도 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여야 중진과 지도부의 역할이 줄었다. 상임위원장도, 여야 간사도 선수(選數)가 낮아졌다. 의회의 지혜를 배우기도 전의 초심자들이 밀어붙이는 데 익숙해지면서 사실상 필리버스터(소수파에 의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마저도 의미 없어졌다.

20대 후반기와 21대 국회에서 다수 일방주의로 전환하는 걸 지켜보면서 입법자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원래 입법자들은 지금 있는 법으론 부족하니 교섭을 통해 미래를 조금씩 개선해나가는 일을 해야 한다. 최근엔 모든 기준을 ‘과거 너희들이 잘못했는지 따지고 응징해주겠다’고 하는 듯하다. 입법부의 정신세계가 처벌부 비슷하게 됐다.

말하는 방법도 과거엔 점잖았다. 특히 국민의힘은 품위 있었다는 데 그렇지 않게 되고, 민주당은 더 예의 없게 됐다고 한다. 말투만 아니라 행태나 문화도 바뀌었다. 이전엔 국정감사가 끝나면 여야 모두 동료로 어울렸는데, 이젠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것 아닌가.

국회라는 건 총선에서 다수당, 소수당이 갈리더라도 다수당에 일방적으로 국정운영을 맡기는 게 아니라 여야 협의를 통해서 야당 시민들도 새로운 법이나 새로운 정책을 수용하게 만드는 정당성을 형성하는 과정인데, 이게 약해지면 사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분열·적대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면 대화해볼 대상이 아닌 걸 넘어, 있어선 안 될 사람이 되고 있다. 입법부의 잘못된 행태가 사회·문화로까지 스필오버되고 있다. 시민사회와 언론도 파당성이 심해졌다. 민변·참여연대나 환경운동 등 내부엔 의원 되겠다는 사람들이 늘어서 걱정하는 분위기도 만들어진다고 하지 않나.

최근 국회의 전체적 변화는 한국 민주주의와 관련된 시민적 덕성이나 마음 상태에 아주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22대 국회에서 더 나빠질까. 일단 더불어민주당에서 추미애 당선인 대신 덜 당파적인 우원식 의원이 국회의장 후보가 된 건 좀 낫다고 본다. “당심을 받들겠다”고 한 건 선거 때의 얘기일 것이다. 말한 대로 한다면 국회가 더 나빠질 것이다.

민주당의 재난지원금 예산안 우선 처리 입장과 관련해선, 예산안 작성 과정에서 의회의 권한이 커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하다. 하지만 행정부와 입법부가 합의해나가는 게 아닌, 파국을 지향하는 것이라 걱정이다. 사회를 위한 최선의 예산 집행이 아닌, 향후 최고권력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 예산과 법을 도구로 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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