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석천의 컷 cut

명승부는 모두를 멋지게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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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들리는 소리라곤 라켓에 공이 부딪히는 타구음과 네트 양쪽의 거친 호흡뿐이다. 선수들이 서는 곳마다 굵은 땀방울이 쉴 새 없이 떨어져 내린다. 승부를 가리자는 경기인데, 이상하게도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영화 ‘챌린저스’의 무대는 테니스 코트다. 코트 위에 서 있는 두 남자는 소년 시절부터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함께 합숙하며 성장했던 왕년의 절친들. 하지만 현재의 처지는 많이 다르다. 아트는 그랜드슬램 달성을 앞두고 있는 스타이고, 패트릭은 챌린저급 대회를 전전하는 무명선수다.

컷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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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는 상대적인 것일까. 실력 차가 클 것 같았던 이 둘이 결승에서 맞붙자 예측불허의 접전이 펼쳐진다. 상황을 더 숨 가쁘게 만드는 건 아트의 아내 타시다. 타시는 과거 패트릭의 여자친구였다. 타시는 두 남자의 랠리를 심각한 표정으로 응시한다. 세 사람 사이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시종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뇌리를 떠나지 않는 단어가 있었다. ‘명승부’다. 좋은 시합은 결과를 떠나 그 자체로 의미가 있음을 선명하게 깨닫게 된다. 구구한 사연 쯤은 가볍게 날려 버릴 정도다. 그 극도의 몰입감 속에서 경기만이 압도적인 생명력을 얻고 ‘너’와 ‘나’의 경계는 사라진다. 숨죽이며 지켜보는 관중마저 속이 후련해지는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그들 모두가 이 순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나는 묻고 싶었다. 이런 명승부는 어떻게 가능한가? 영화는 답한다. “테니스는 관계”라고. “테니스를 하며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게 된다”고. 그렇다면 우리의 승부 역시 무엇을 위한 것인지 떠올려봐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든 이기고야 말겠다는 욕심도, 질까 봐 초조한 마음도 잊은 채 ‘함께 멋진 경기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할 때 우린 좀 더 나은 사람들이 되어 있을지 모른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