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안병억의 마켓 나우

중국이 공들이는 ‘유럽의 약한 고리’ 헝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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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

“헝가리의 독립적인 외교정책을 지지한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지난 5~10일 유럽을 순방했다. 8~9일 헝가리 공식 방문이 마지막 일정이었다. 시 주석은 빅토르 오르반 총리가 친중·친러 외교정책을 실행 중이라며 그를 추켜세웠다. 공동 기자회견에서 오르반은 “중국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평화 협정 이니셔티브를 지지한다”고 화답했다. 시 주석은 양국 관계를 ‘신시대 전천후 전면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하기로 오르반과 합의했다.

마켓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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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나라는 2017년부터 ‘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왔다. 여기에 ‘신시대’와 ‘전천후’를 추가해 관계를 업그레이드하기로 한 것. 중국 기준에 따르면 이는 러시아·파키스탄에 이어 세 번째로 중요한 외교관계다.

5년 만에 유럽을 순방한 시 주석은 경제력 등을 기준으로 유럽연합(EU) 주요 회원국인 이탈리아나 스페인이 아니라, 헝가리를 방문했다. 헝가리가 유럽에서 ‘약한 고리’이기 때문이다.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속한 헝가리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비판하지 않았고 러시아 원유를 계속 수입 중이다. 지난 2월 EU는 앞으로 4년간 우크라이나에 500억 유로(약 73조 5000억원)를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헝가리는 거의 반년을 반대하다가 막판에 겨우 합의해줬다.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EU는 회원국의 법치주의 준수를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온 오르반은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국내 정책 때문에 EU와 대립해왔다. 2010년부터 총리로 재직 중인 그는 판사 임명을 행정부의 통제 아래 뒀고, 친정부 기업들의 언론사 인수를 후원해 비판적인 언론 장악에 나섰다. EU는 헝가리의 법치주의 위반을 이유로 EU 예산 지원 일부를 동결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지원이 헝가리 때문에 장기간 막히자 보류했던 300억 유로의 예산 중 3분의 1을 지원했다.

인구 970만 명의 헝가리는 EU의 외교안보정책이 만장일치제로 작동하기에 자신의 반대 의견을 무기 삼아 EU의 단합을 저해해왔다. 하필 올 하반기 헝가리는 EU의 순회의장국이다. 순회의장국은 유럽이사회 상임의장과 함께 EU를 대외적으로 대표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공세가 한층 강화되는 시점에서 헝가리가 어떻게 의장국 역할을 수행할지 주목된다. 유럽의회는 1년 전 ‘헝가리가 순회의장국에 적합하지 않다’며 EU가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결의안까지 통과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결의안이고 대안이 없기에 헝가리는 오는 7월부터 반 년간 순회의장국이 된다. 더 강력하고 신속해져야 할 EU의 대러시아 정책이 느슨해질 가능성이 높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국제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