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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 전 미 대통령/궂은일 찾아 “동분서주”(특파원코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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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인권·분쟁중재등 앞장/무주택자에 10년째 집지어 주기도
현직 대통령시절 인기가 없어 임기 4년만을 채우고 초라하게 물러났던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이 퇴직후 오히려 눈부신 활동을 벌여 가장 모범적인 퇴임대통령으로 칭송을 받고 있다.
그는 퇴임후 지금까지 10여년 동안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지어 주기 운동·각종 인권활동·분쟁지역의 중재·중남미 독재국가에 민주정권수립 등을 위해 동분서주,퇴임대통령으로서 미 헌법에도 없는 역할을 자청해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최고주간지 내이션지는 최근 카터의 활동을 보도하며 『전직대통령이라는 명성을 이용하여 돈벌이에 급급한 레이건이나 주식투자로 1년에 1백만달러씩이나 벌어들이는 포드,워터게이트의 불명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변명용 회고록만 발행하는 닉슨등 다른 전임대통령과 비교할 때 카터의 활동은 독보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카터대통령은 퇴임대통령들이 자신들의 재직시 각종 공식문서 등을 보관키 위해 세우는 기념도서관을 그의 활동 본거지로 삼고 있다.
그는 이 도서관을 「카터도서관 및 카터센터」로 명명하여 지금까지 모금한 1억5천만달러의 기금을 이용하여 1년예산 1천7백만달러에 상주직원 1백10명의 도움을 받아 각종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카터센터안에 조그만 아파트를 마련,조지아주에 있는 자신의 땅콩농장을 떠나 한달에 5일씩 묵으며 일을 처리하고 있으며 조지아주농장에는 국무부 및 백악관과 직통전화를 가설하여 부시대통령 및 베이커국무장관 등과 정기적으로 통화를 해 충고도하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카터 전 대통령은 주로 인권·교육·예방의학 등 정부와 공식기관이 소홀하기 쉬운 분야를 택해 지원하고 있다.
인권분야만을 보더라도 전담요원 2명을 두어 앰네스티등과 협조,한달에 한두번은 정기적으로 세계인권현황에 대한 보고를 듣고 이의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선다는 것이다.
카터 전대통령이나 부인 로절린여사는 수감중이거나 핍박을 받는 인권피해자들의 개인을 위해 해당 국가원수에게 편지를 쓰거나 통화를 하고 있다.
이 덕분에 몇명은 생명을 구했고 수백명이 석방됐다. 해당국가 원수들이 카터로부터 공개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을 염려하여 그의 요청을 묵살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카터인권상을 마련하여 인권운동가와 단체에 매년 10만달러의 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가난한 무주택자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는 운동도 주도해 지금까지 6천5백가구의 주택을 짓거나 개량했으며 1년에 1주일은 자신이 직접 현장에나가 목수일 등 노동을 직접하고 있다.
그는 또 범세계적으로 공해문제를 해결키 위해 「글러벌 2000년」이라는 유명한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가 하면 기아아동 퇴치운동도 주관하고 있다.
그의 활동은 외교·정치분야에서도 돋보인다.
최근 선거를 치러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한 아이티의 경우도 카터의 힘이 컸다.
카터는 올해들어 세번이나 아이티를 방문,평화적인 선거가 치러질 수 있도록 독려했으며 12월 선거때는 선거감시요원으로 직접 활약했다.
파나마의 노리에가 대통령시절 선거감시요원으로 활약하면서 부정선거를 목격하고는 전직 미대통령이라는 체면을 아랑곳하지 않고 개표장에서 『너희들이 도둑놈 아니냐』고 고함을 질렀던 일화는 아직도 유명하다.
1년전에는 아프리카를 두번 방문하여 29년간 끌어온 에티오피아 내전에 중재를 맡았으며 지난봄에는 중동을 세번째로 여행하며 중동평화를 모색했다.
이 덕분에 미국과 시리아가 관계를 개선하는 계기를 찾아 이번 쿠웨이트사태때는 시리아가 미국편에 서서 다국적군까지 보내기도 했다.
그는 에티오피아내전·레바논내전·팔레스타인 문제 등 세계 분쟁지역에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국제협상연락기구」라는 단체를 만들어 반군지도자나 해당 국가원수등과 수시로 접촉하며 협상을 모색하고 있다.
이같은 그의 활동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스스로가 철저한 청교도적인 생활을 하며 병적일만큼 양심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모두에게 신뢰를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훌륭한 퇴임대통령으로 쓰기 위해 실패한 현직 대통령으로 신이 만들었다는 운명론까지 나오고 있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PN JAD
PD 19901229
PG 08
PQ 02
CK 05
CS D01
BL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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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 전택원
TI 「풍수」에 매달리는 홍콩빌딩(특파원코너)
TX ◎방위·형태·개관날짜 크게 신경/“불행 막는다”풍수사 고용업체도/대형건물 「풍수료」 건당 5천만원까지
번영과 현대화를 구가하고 있는 홍콩은 고층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으나 실제로는 엄격한 지리풍수설에 의해 건물들이 설계되고 있어 홍콩진출 서방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홍콩의 빌딩군은 빅토리아항만을 사이한 홍콩섬과 구용반도의 대안에 밀집해 있다.
이같은 경관가운데 중국은행·리전트호텔·증권거래소 등은 홍콩의 스카이라인을 결정하는 커다란 기둥들에 해당된다.
이들 현대식 고층건물은 대부분 건축시 「풍수사」가 참여했다.
지구 반대편의 주식시세가 단추하나로 전달되고 인공위성을 통한 원격 화상회의가 열리며 최첨단의 경영기술이 치열하게 각축하는 홍콩에서 수천년의 기원을 가진 풍수가 오히려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출신의 최고경영진이 풍수의 신통력에 두손을 들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지극히 「정상인」임에 오해가 없기를 강조하는 당혹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도 홍콩에서는 무리가 아니다.
집무실에서 늘상 두통에 시달리다 풍수사의 권유에 따라 책상의 방위를 바꾸고부터 언제 마지막 아스피린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콩·상하이은행과 스탠더드 차터드은행도 라이벌 관계답게 풍수의 신뢰도면에까지 경쟁적이다.
홍콩·상하이은행은 불행을 막아준다는 「피아물」인 2개의 거대한 청동제 사자상을 풍수사의 지시에 따라 길일을 가려서 최고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안치식을 가지기도 했다.
스탠더드 차터드은행 본점건물은 설계단계부터 풍수사들의 상담을 거쳤다. 풍향을 재고 건물방위와 정문위치를 잡는 한편 건물형태는 8각형으로 했다.
8은 중국인의 행운의 숫자. 건물자체가 『행운을 끌어들이는 강력한 자석』인 셈이다. 그리고 6 또한 길수로 6층마다 휴게실인 「유심처」를 마련했으며 길일을 가려 개장했음은 물론이다.
홍콩 최고의 야경을 실내에서 즐길수 있다는 리전트 호텔의 바다쪽으로 창이 난 코피 숍도 풍수사의 걸작품이다.
홍콩증권거래소의 건축사 레모 리바씨는 설계당시 『기를 받아들이는 안테나를 세워야 한다』는 풍수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안테나란 지붕에 구멍을 내는 것이었다. 증권거래소는 또 3개의 분리된 빌딩으로 U자형으로 배치됐다. 항만으로부터 행운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풍수사들은 홍콩의 지세가 멀리 중국의 곤륜산에서 뻗어와 구용반도를 맺고 빅토리아 항만에서 잠겼다가 다시 머리를 들어 홍콩섬을 이룬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곧 「용이 머리를 돌려 조상을 보는 형세(회용고조)」로서 길지라는 것이다. 리전트 호텔과 증권거래소가 항만쪽으로 자리잡게된 것도 이같은 풍수상의 배경과 관련된다.
건물의 위치,형태,개업날짜,실내장식,심지어는 주방의 화덕자리까지 관장하는 풍수사의 수입은 관록과 감정내용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형건물의 경우 건당 10만 홍콩달러(약 1천만원)내지 50만 홍콩달러(5천만원)까지 수입을 올리며 아예 회사에 따라 전용 풍수사를 고용하는 업체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행의 건축과정에서 홍콩의 풍수사가 철저히 배제당한 것은 역설적이다.
중국은행을 설계한 미 국적의 중국인 설계사는 『풍수가 사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물론 홍콩의 풍수사들은 이 말을 믿지 않는다. 누구보다 중국인을 잘알고 있다는 것이다.
유리와 강철로 구성된 73층의 3각형 기둥인 중국은행 건물은 거대한 은빛칼날을 연상시킨다. 그 칼날은 발치에 있는 홍콩 최고의 명당이라는 홍콩총독관저를 정확하게 양분하는 모습이다.
홍콩의 신문들은 지난 여름 총독관저의 중국은행쪽 마당 귀퉁이에 수양버들이 한그루 심어 있는 사진을 게재했다. 부드러운 것으로 강한 것을 제압할수 있다는 뜻이다.
한반도에서 풍수설에 좇아 지맥을 파손했던 일본과는 달리 홍콩에서 풍수사를 역이용해왔던 영국의 관록을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19세기 중반 길고 긴 중국연안에서 이미 최고의 항만을 점지했던 영국은 풍수라는 심리전까지 활용하여 지구상 최후의 식민지를 완벽하게 운영해온 셈이다.<홍콩=전택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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