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사망에...올림픽 3연패 도전 '마라톤 영웅' 신변위협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케냐의 마라톤 영웅 엘리우드 킵초게. AFP=연합뉴스

케냐의 마라톤 영웅 엘리우드 킵초게. AFP=연합뉴스

뜬금 없는 음모론에 마라톤 영웅이 고통받고 있다.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하는 엘리우드 킵초게(40·케냐)가 교통사고로 별세한 켈빈 킵텀(케냐)의 사망에 연루된 게 아니냐는 사이버 테러를 당했다.

킵초게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소셜미디어에서 내가 킵텀의 죽음에 연루됐다는 글이 올라왔다"고 털어놓았다. 킵텀은 지난해 10월 시카고 마라톤에서 42.195㎞ 풀코스를 2시간 35초만에 달렸다. 킵초게가 2022년 베를린에서 세운 세계기록(2시간 1분 9초)을 16초 앞당겼다. 인류 최초 '서브2(2시간 이내 풀코스 완주)' 도전도 기대됐다. 하지만 지난 2월 12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일부 온라인 이용자들은 '킵초게가 킵텀의 사망 배후에 있는 게 아니냐'는 음모론을 펼쳤다. 킵초게가 킵텀이 세계기록을 세울 때 진심으로 축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킵초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본다"며 한탄했다.

2023년 10월 시카고 마라톤에서 세계기록을 세운 캘빈 킵텀. 그러나 4개월 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AFP=연합뉴스

2023년 10월 시카고 마라톤에서 세계기록을 세운 캘빈 킵텀. 그러나 4개월 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AFP=연합뉴스

악플러들의 공격은 킵초게에서 멈추지 않았다. 가족들까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킵초게는 "기숙학교에 다니는 딸이 SNS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게 다행이다. 하지만 아들들이 SNS에서 '네 아버지가 킵텀을 죽였다'는 말을 듣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고 했다.

이어 "내가 태어난 곳은 시골이다. 하지만 SNS를 하지 않는 어머니까지 알고 있다. 어머니가 '잘 지내라. 많은 일이 있었다'는 말을 했다"며 괴로워했다. 킵초게는 "내 사람들, 훈련 동료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까지 좋지 않은 말들을 듣게 되면서 정말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정신적인 괴로움이 경기력에도 영향을 끼쳤다. 킵초게는 올해 첫 대회인 지난 3월 도쿄 마라톤에서 2시간 6분 50초의 기록으로 10위에 머물렀다. 킵초게는 "3일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관계자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SNS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지만, 킵초게는 삭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내 계정을 삭제하면 내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고 오해할 수 있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그는 악성 댓글을 다는 이들에게 특별한 조치를 하지도 않았다. 그는 "이 일로 나는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됐다. 심지어 내 그림자조차 믿지 못하겠다"고 했다.

2021년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낸 엘리우드 킵초게. AP=연합뉴스

2021년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낸 엘리우드 킵초게. AP=연합뉴스

킵초게는 2024년 파리올림픽 기간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사이버 테러에 대해)선제적이고 규모 있게 대응할 계획"이라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발표를 환영했다. IOC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욕설 게시물을 파악해 소셜미디어 업체에 전달할 계획이다.

킵초게는 2016 리우올림픽과 2020 도쿄올림픽에서 연이어 금메달을 따냈다. 올림픽 마라톤에서 2연패를 달성한 선수는 3명(아베베 비킬라, 발데마르 치핀스키, 킵초게)이다. 40살의 노장 킵초게는 사상 첫 3연패에 도전한다. 킵초게는 "나는 계속해서 훈련할 것이다. 일어나서 목표를 향해 달리겠다. 나는 역사책에 사상 첫 3회 연속 우승을 달성한 선수로 이름을 남기고 싶다"고 의지를 다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