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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베트남, 올해는 이스라엘…미 대선 흔드는 반전 시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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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8호 10면

[김동석의 미 대선 워치] 점점 커지는 미 대학가 시위

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UCLA) 캠퍼스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대와 경찰이 맞서고 있다. 이날 시위대는 해산됐다. [AFP=연합뉴스]

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UCLA) 캠퍼스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대와 경찰이 맞서고 있다. 이날 시위대는 해산됐다. [AFP=연합뉴스]

지난 1968년 8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베트남전 반대 시위대와 경찰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당시 경찰의 진압은 상당히 잔혹했다. 나중에 연방의회 조사위원회가 경찰의 시위 진압이 아니고 ‘경찰 폭동’이라고 묘사할 정도였다.

민주당 내홍으로 공화당 닉슨 후보 당선

미국 현대 정치사에서 1968년은 ‘혼돈과 혁명의 시대’로 불린다. 베트남에 파병된 미군이 매달 1000여 명씩 사망하자 반전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또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흑인 인권운동가로 베트남전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던 마틴 루서 킹 목사와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잇달아 암살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은 반전 여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재선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미국 사회는 크게 혼란스러웠다.

당시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에서는 베트남 내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과 미군 철수에 부정적인 허버트 험프리 부통령이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민주당 내에서 인기가 높았던 매카시 상원의원은 전당대회 전 예비경선에서 이미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반면 험프리 부통령은 예비경선에 단 한 번도 참가하지도 않은 채 전당대회에 후보로 나섰다. 경선에서 중도 하차한 존슨 대통령의 자리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예비경선에 참여하지 않고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선출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당시엔 예비선거를 하지 않는 주가 더 많았다. 따라서 시민이 참여하는 예비선거를 통해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정치 엘리트들이 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존슨 대통령과 당의 지도부는 경선을 통과한 매카시 상원의원이 아닌 험프리 부통령을 후보로 만들려고 했다.

결국 험프리 부통령은 예비선거가 열리지 않은 주들의 대의원 표를 독식했고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이같은 민주당 전당대회의 비민주성에 분노한 시민들은 시카고로 몰려들었다. 전당대회장 앞에서는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참여한 대규모 반전시위가 벌어졌고, 경찰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했고,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는 장면이 전국에 생중계됐다. 그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결국 민주당이 아닌 공화당의 리차드 닉슨 후보가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됐다.

1968년 시카고 전당대회장으로 몰려든 젊은이들은 도덕적 신념을 바탕으로 베트남 전쟁에 대해 분노하고 적극적으로 항의할 준비가 된 세대였다. 게다가 이들은 전쟁의 참상을 거의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던 미국 최초의 텔레비전 세대이기도 하다. 당시 젊은이 100만 명이 징집됐고 이에 반대하는 운동은 주로 대학 캠퍼스에서 시작되어 확산됐다. 반전 운동에 앞장선 학생들은 방학이 되자 캠퍼스를 떠났지만, 그들의 반대 운동은 학교 밖에서 더욱 거세졌다. 그래서 전국 각지의 대학생들이 19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에 집결하게 된 것이다.

올해 8월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곳도 역시 시카고다. 1968년 그때와 마찬가지로 학기가 끝나고 학생들은 캠퍼스를 떠나겠지만, 이들은 방학을 맞아 시카고 전당대회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할 준비를 하고 있다. 반백 년이 훨씬 지난 지금 다시 반전 운동이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커뮤니티 활동가인 하템 아부다예는 “우리는 당국의 허가와 관계없이 무조건 시카고에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젊은이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생생하게 접하고 분노하고 있다. 최근 미국 사회는 적지 않은 대규모 시위를 경험했다.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흑인 생명 문제(Black Lives Matter) 운동, 플로리다의 파크랜드 학생들의 총기 규제 캠페인 등이다.

무슬림, 조지아·미시간·위스콘신에 밀집

베트남 반전 운동 이후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미국 내 진보적 시민사회가 국가의 주요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을 새로운 정치적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최근 몇 주 동안 심각하게 확산되고 있는 주요 대학에서의 격렬한 시위도 그중 하나다. 대학가 시위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민간인 학살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반대하는 것에서 촉발됐다. 하지만 불어나는 시위대의 양상은 가깝게는 4년 전 미 전역을 휩쓴 BLM(흑인도 생명이다) 운동과 유사한 측면이 있고, 멀게는 1968년 베트남 반전 시위대의 물결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불어나는 시위대는 정확하게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을 겨냥하고 있다. 이들은 수만 명의 무고한 가자지구 민간인들을 살상한 전쟁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에 무조건적인 군사 지원을 계속 보내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는 진보적 주장을 펼치고 있다. 가자지구와 관련한 미국의 역할에 대한 민주당 유권자들, 특히 젊은 유권자들의 분노가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에 심각한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바이든)의 외교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가자지구 내 반인권적 행위에 대한 비판의 중심엔 팔레스타인계 미국인들이 있지만, 이들의 생각을 ‘반유대주의(anti-semitism)’로 볼 수는 없다. 민주당 외교위원이면서 가장 나이 어린 유대계 연방 하원의원인 사라 제이컵스 의원(캘리포니아)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비판이 반유대주의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번 반전 운동의 중심에는 젊은 MZ세대가 있고, 이들은 바이든의 정치를 바꾸기 위해 매우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대선의 승패를 결정짓는 경합 주에서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다. 무슬림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1% 안팎에 불과하지만, 경합 주인 조지아·미시간·위스콘신에 밀집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의 지지 없이는 바이든의 재선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2월 27일 미시간주 프라이머리에서 이들 중 13%가 기존의 바이든 지지를 철회해 이탈했다. 또 4월 2일 위스콘신주 프라이머리에서는 9%가 이탈했다. 만약 11월 대선 본선에서 이들의 상당수가 이탈한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 두 곳에서 트럼프 후보에게 패하게 된다. 이 두 곳의 대통령 선거인단 수는 25명에 달한다. 전체 538명의 4.6% 가량을 차지한다.

8월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를 벼르고 있는 시위대의 구성은 다양하다. 4년 전 BLM 시위대도 다양한 범진보세력들의 연합으로 탄생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와 유사한 연합조직이 바이든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는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목소리가 “트럼프로부터 현재의 미국을 지키자”는 것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마치고 1996년 한인유권자센터를 설립해 한국계 교민·교포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활동해 왔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등 워싱턴 정계에 인맥이 두텁다. 한·미관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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