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봄바람이 불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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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경아 정원 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오경아 정원 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내가 사는 속초엔 거센 봄바람이 분다. 강원도 양양에서 동해안 간성(고성지역의 옛 지명)으로 분다고 하여 ‘양간지풍(襄杆之風)’이라고 한다. 반대 방향으로 불면 높새바람이 된다. 이곳 농부들은 이 바람이 지나가야 식물을 심는다. 이 봄바람은 해마다 찾아오지만, 간혹 건너가는 해도 있다. 4월 20일 전후인 곡우를 기준으로 바람이 불지 않으면 올해는 쉬어주는구나 생각도 한다. 다행히 올해는 아직 바람이 없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서 가장 오랫동안 농사를 짓고 계신 노인회장님이 아직 논에 모를 내지 않고 있다. 이 분이 심지 않으니, 다른 논에도 모내기가 아직이다. 아마도 봄바람이 한 번은 올 것 같다고 예감하신 듯하다. 나 역시 노인회장님댁 논에 모내기가 됐나 안됐나를 살피며, 큰 나무를 심어도 될지 그 시기를 따져본다.

행복한 가드닝

행복한 가드닝

요즘 인기인 ‘삼체’라는 영화 시리즈를 보면, 태양이 하나라는 사실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알 수 있다. 하나의 태양을 중심으로 모든 행성이 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루의 길이, 1년의 공전, 지역별 날씨 등의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영화 속 외계인 삼체인은 세 개의 태양을 두고 있어, 어떤 계산 방법으로도 태양의 주기를 계산할 수 없다. 세 개의 태양에 의해 날씨와 중력이 요동을 치고 결국 모든 생명체는 파멸을 맞는다.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에서 고도의 문명을 이룬 것은 예측 가능한 안정 때문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예측은 사전에 ‘미리 헤아려 짐작하다’로 적혀 있다. 예측이 가능하면 아무리 혹독하고 힘겨워도 대비하고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예측이 통하지 않는다면 재앙이 따를 수밖에 없다. 속초에 찾아온 봄바람 없는 이 평온함에 나는 안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낀다. 지금 정원엔 피어났던 튤립의 꽃잎이 떨어지는 중이다. 이 튤립이 다 지면 여름이 찾아올 것이다. 올해도 무사히 이 모든 계절이 우리 곁에 잘 와주길 바라고 또 바란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