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 여자핸드볼 빼고 전멸…한국, 파리 금 목표 고작 5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위기의 한국스포츠

지난 26일은 ‘한국 축구 치욕의 날’로 기록됐다. 한국은 이날 열린 2024 파리올림픽 남자축구(23세 이하) 아시아 최종예선 8강전에서 인도네시아에 승부차기 끝에 져 탈락했다. 연장전까지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10-11로 졌다. 한국 올림픽축구대표팀은 황선홍 감독이, 인도네시아 팀은 한국 출신인 신태용 감독이 각각 이끌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3위 한국이 111계단 아래 인도네시아(134위)에 덜미를 잡힌 건 망신을 넘어 참사다. 40년간 이어 온 남자축구 올림픽 본선 연속 진출 기록도 9회에서 멈췄다. 지난 27일 귀국한 황 감독은 “책임은 전적으로 감독에게 있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겐 비난보다 격려를 보내달라”며 고개를 숙였다.

대한축구협회(KFA)를 위시한 한국 축구 전반은 이번 일로 대대적인 개혁 요구에 맞닥뜨리게 됐다. 우선 현재 공석인 축구대표팀(A팀) 감독 선임 문제를 포함한 연령별 대표팀의 운영 시스템 등이 수술대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정몽규 협회장과 국가대표팀 전력강화위원회(위원장 정해성)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도 거세다. 실제로 두 사람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지난 1월 아시안컵 당시 한국 축구가 내홍에 휩싸이자 문화체육관광부도 “축구협회의 자율적인 회복 노력을 우선 지켜보겠지만, 국민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체육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 입장에서 경고든, 제재든 마땅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자축구가 도화선이 됐지만, 한국 스포츠계 전반에는 위기감이 높다. 우선 당장 파리올림픽에 출전하는 단체 구기 종목이 여자핸드볼 하나뿐이다. 그나마 본선 전망은 매우 흐리다. 올림픽만 다가오면 입버릇처럼 외치던 ‘10-10’(금메달 10개 이상으로 종합순위 톱10 진입)도 옛말이다. 이번 파리올림픽 목표는 금메달 5~6개다. 이는 한국의 올림픽 경쟁력이 40년 전인 1984년 LA 올림픽(금6·은6·동7) 수준으로 뒷걸음질 쳤다는 의미다.

대한체육회 선수 12년간 26% 감소

남자축구가 인기 종목이다 보니 이번 탈락이 도드라져 보일 뿐, 2000년대 들어 올림픽 출전 선수단 규모와 금메달 효자 종목 변화 추이를 보면 한국 스포츠의 국제 경쟁력은 꾸준한 하향세였다. 단체 구기 종목과 함께 올림픽에서 이른바 ‘메달밭’이던 복싱·레슬링·유도 등 투기 종목은 추락한 지 오래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하향세의 배경으로 다양한 분석이 나오는데, 모두를 관통하는 근본적 원인으로 꼽히는 건 ‘인구 절벽’으로 표현되는 출산율 급락이다. 1980년대 1명대 후반 수준(1984년 기준 1.74명)이던 출산율은 정부의 엘리트 스포츠 육성 정책과 맞물려 2000년대 초반 한국이 올림픽에서 선전하는 발판이 됐다. 같은 맥락에서 2000년대 들어 1명대 초반(2004년 기준 1.164명)으로 떨어진 출산율은 한국 스포츠의 최근 부진과 맞물려 있다.

지난 2008년 13만546명이던 대한체육회 등록 선수 숫자는 2020년 9만6837명으로 26%나 줄었다. 2021년 이후 공공스포츠클럽 같은 생활체육 참여자까지 포함하면서 올해는 29만7082명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선수 대부분이 축구(13만3945명) 등 저변이 탄탄한 일부 종목에 몰려 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 0.72명까지 내려간 (합계)출산율이 국제 스포츠 경쟁력에 영향을 미치게 될 2040년 상황은 상상하기조차 두렵다”고 말했다.

자녀 운동선수로 키우려는 부모 줄어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두 자녀 이상 둔 가정이 급감하면서 자녀를 엘리트 운동선수로 키우려는 가정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나마 운동을 시키는 경우에도 단체·투기 종목보다는 기록 종목이나 신체 접촉이 적은 종목 위주로 선호가 바뀌고 있다. 그 결과 수영(황선우·김우민), 육상(우상혁) 등 과거 한국이 취약했던 기초 종목에서는 오히려 세계 수준의 선수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 밖에 축구, 골프 등 프로리그가 존재하거나 프로선수가 될 수 있는 종목은 등록 선수가 조금 늘거나 감소세가 완만하다.

특히 한국은 인구 급감에 생활체육 저변까지 얇아 기존의 엘리트 선수 지원 확대 같은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스포츠계 인사들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이들은 올림픽에서 메달 한두 개를 더 따는 단기간 목표 수립보다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 방안 중 하나로 꼽히는 게 학교 체육 개편인데, 어릴 때부터 꾸준히 스포츠에 친숙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일이다. 그 일환으로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지난 2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구권 여러 나라처럼 대학입시에 고교 시절 스포츠 참여도를 반영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입시 체계를 바꾸는 게 쉽지 않지만, 교육부와 손잡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차근차근 바꿔나갈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