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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미국이 키운 불확실성에…국내 주식·원화·채권 '트리플 약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달러당 원화값이 1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장중 1400원을 넘긴 1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환율 정보가 나오고 있다. 뉴스1

달러당 원화값이 1년 5개월 만에 처음으로 장중 1400원을 넘긴 1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환율 정보가 나오고 있다. 뉴스1

중동에 이어 미국이 키운 불확실성이 16일 국내 금융시장을 덮쳤다. 주식·채권·원화값이 동시에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가 나타났다. 이란·이스라엘 대립에 따른 불안이 지속하는 가운데 미국 소비 지표까지 호조를 보이면서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옅어진 여파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은 전날보다 10.5원 내린(환율은 상승) 1394.5원으로 마감했다. 오전 한때 1400원대도 터치했다. 장중 1400원을 찍은 건 2022년 11월 7일 이후 17개월 만이다.

이처럼 달러당 원화값이 급락하자 외환당국도 변동성 완화를 위한 공식 구두 개입에 나섰다. 한국은행·기획재정부는 오후 3시께 "환율 움직임, 외환 수급 등에 각별한 경계감을 가지고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 "지나친 외환시장 쏠림 현상은 우리 경제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달러당 원화값은 이달 들어서만 45원 넘게 떨어졌다. 특히 종가 기준으로 12일 1370원대, 15일 1380원대에 도달한 데 이어 하루 만에 곧바로 1390원 선까지 뚫는 등 최근 하락 폭이 가파르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장중 1400원까지 찍은 건 '묻지마 매수'로 대표되는 패닉성 심리가 나타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감에 안전 자산인 달러를 일단 사고 보자는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주가와 채권값도 동반 하락했다. 코스피는 전날보다 2.28%(60.80포인트) 떨어진 2609.63에 마감했다. 지난 1월 17일(-2.47%) 이후 석 달 만에 가장 큰 하락 폭이다. 장중 한때 2601.45로 떨어져 2600선이 위협받기도 했다. 삼성전자(-2.68%), 셀트리온(-3.70%) 등 시총 상위 종목 대부분이 하락세를 나타냈다. 외국인 투자자가 2700억원 넘게 순매도하면서 증시를 끌어내렸다. 한때 1400원까지 떨어졌던 원화값이 외국인 자금 수급에 악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채권시장에 따르면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057%포인트 오른(채권값은 하락) 연 3.618%에 장을 마쳤다.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연 3.469%)도 하루 새 0.029%포인트 뛰면서 연중 최고치를 찍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이날 국내 시장엔 탄탄한 미국 경제가 전방위적인 '악재'로 작용했다. 15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3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7% 늘면서 시장 전망치(0.3%)를 뛰어넘었다. 소비 지표 고공행진이 고물가 지속 가능성을 키우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 금리 인하 시점도 점차 후퇴하는 양상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6월과 7월 금리 동결 확률은 각각 74.9%, 51.9%(한국시간 16일 오후 5시 기준)에 달한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진정되던 통화정책 불안 심리를 미국 소매판매 '서프라이즈'가 다시 자극했다"고 밝혔다.

고금리 장기화 우려는 '강달러'로 연결된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1973년=100)는 이날 106.21로 오르면서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달러당 엔화값도 154엔대까지 떨어지면서 1990년 6월 이후 34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다.

16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내 TV에 이란-이스라엘 분쟁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내 TV에 이란-이스라엘 분쟁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안갯속 중동 정세도 위험자산 회피(리스크 오프)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13일 밤(현지시간) 본토를 공격받은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재보복 카드를 고심하고 있다. 미국 등 국제사회 압박에 전면전을 유발하지 않는 '고통스러운 보복'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지만, 대규모 군사 대응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이스라엘이 확전을 택한다면 강달러 현상이 심화하고, 원화값·코스피 등은 더 크게 들썩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미국·중동 변수는 빠르게 해소되기 어려워 당분간 국내 금융시장이 출렁일 가능성이 크다. Fed가 중요하게 보는 지표인 미국 개인소비지출(PCE)의 3월 수치가 발표되는 26일 즈음이 변곡점으로 꼽힌다. 다만 원화값이 종가 기준으로 1400원대를 넘어설지에 대해선 신중한 반응이 많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환율이 이렇게까지 움직일 상황이라고 보진 않는다. 수출이 꾸준히 늘고 있고, 경상수지가 이전보다 많이 회복했기 때문에 최근의 원화 약세는 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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