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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과 황산 계약도 끊은 고려아연 “이제 공동 사업 없다”

중앙일보

입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과 장형진 영풍 고문. 사진 고려아연·영풍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과 장형진 영풍 고문. 사진 고려아연·영풍

고려아연이 영풍과의 공동 사업 계약을 모두 끊는다. 고려아연은 영풍과 마지막 남은 공동 사업 영역인 황산 취급 계약을 오는 6월 만료 이후 더 연장하지 않는다고 13일 밝혔다.

고려아연은 그동안 영풍의 석포제련소에서 나오는 황산을 자신들의 온산제련소 황산탱크에 대신 보관해주는 계약을 영풍과 맺고 있었다. 아연을 생산할 때 황산이 부산물로 나오는데 영풍엔 황산을 보관할 탱크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고려아연이 대신 보관한 영풍 측 황산은 40만t이다. 고려아연이 온산제련소에 보관하는 황산이 연간 160만t이니 4분의 1이 영풍 측 황산인 것이다.

고려아연은 황산 보관 시설이 노후화돼 일부 시설을 폐기했고, 고려아연에서 만들어지는 황산도 계속 증가해 보관이 부족하다는 점을 황산 취급 계약 종료의 이유로 설명했다. 반면 영풍은 고려아연이 자신들과 관계를 끊기 위해 감정적으로 계약을 종료한다고 보고 있다. 양측은 “이번 황산 취급 계약까지 끝나면 사실상 둘이 공동으로 하는 사업은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고려아연은 비용 절감을 위해 영풍과 원료 공동 구매·영업도 종료한다고 밝혔다.

‘루비콘 강’ 건넌 75년 공동경영

석포제련소 모습. 강찬수 기자

석포제련소 모습. 강찬수 기자

공동 사업이 모두 종료를 앞둔 만큼 75년 공동경영을 해온 최씨 가문과 장씨 가문은 이제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장병희 창업주와 최기호 창업주는 1949년 영풍기업사를 함께 창업하며 공동경영을 시작했다. 1974년 고려아연이 창립된 뒤 고려아연은 최씨 가문이 경영을 맡고, ㈜영풍과 전자 계열사는 장씨 가문이 경영을 맡아왔다.

그러나 3세 경영 체제가 되면서 균열이 시작했다. 2019년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대표이사에 오른 뒤 기존 금속 제련 중심에서 2차전지 소재, 그린 수소 등으로 사업 영역을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영풍과 사이가 벌어졌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 등의 안건을 두고 감정 골을 보인 뒤론 양측은 갈등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왔다. 재계에선 창업 3세대에 이른 만큼 공동 경영 체제가 끝나가는 상황으로 봤다.

공동 사업 영역을 정리한 양 측에 남은 분쟁 지점은 서린상사 이사회다. 서린상사는 양사의 제품 판매를 맡아 두 기업의 우호를 상징하던 회사다. 그런데 최대주주인 고려아연이 서린상사 이사회 개편을 추진하며 갈등이 깊어졌다. 현재 서린상사 이사회는 고려아연 측 4인과 영풍 측 3인으로 구성돼 있다. 고려아연은 사내이사 4명 추가 선임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 고려아연 대 영풍의 이사진 구성이 8대 3이 된다.

“별거 상태 계속될 것”

지난달 19일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에서 고려아연 제50기 정기주주총회가 열리고 있다. 고려아연 제공

지난달 19일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에서 고려아연 제50기 정기주주총회가 열리고 있다. 고려아연 제공

고려아연은 지난 3월 이런 내용의 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주주총회 개최를 위해 서린상사 이사회를 열려고 했지만, 영풍 측 이사들이 불참해 열리지 않았다. 고려아연은 법원에 임시 주주총회 소집청구를 신청했다. 오는 17일 법원은 해당 사안을 심리할 예정이다. 그러나 법원 결정으로 주총이 열려 고려아연 측 이사가 이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더라도 고려아연과 영풍의 ‘불편한 동거’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장세환·류해평 현 서린상사 대표는 영풍 측 인사다.

향후 양 측의 고려아연 지분 싸움이 계속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현재 최씨 가문과 장씨 가문의 고려아연 지분은 32% 내외로 비슷한 수준이다. 영풍 관계자는 “현재도 양 측이 지분을 사모으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계열 분리까지 이어지긴 쉽지 않다. 공정거래법상 계열분리를 위해서는 주식 보유 비중을 상호 3% 미만으로 줄여야하는데 지분 경쟁이 계속되는 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지분은 함께 갖고 있지만 공동 경영도, 공동 사업도 안 하는, 말하자면 ‘별거 상태’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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