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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의대 증원 반대가 총선 민심이라는 의사들의 착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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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민심은 증원엔 찬성, 일방적 추진에 대한 우려일 뿐

‘증원 백지화’는 아전인수, 정부도 적극 대화·협상을

의료 개혁을 추진하던 정부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그러는 사이 의료계에선 “이번 총선 결과가 의대 정원 확대를 거부하는 민심을 확인한 것”이란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온다. 착각이자 자가당착이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2일 “여당의 총선 참패는 국민이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정부에 내린 심판”이라고 주장했다. 주수호 전 의협 회장도 총선 결과에 대해 “14만 의사와 2만 의대생, 그 가족들을 분노하게 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이 12일 서울 용산구 의사협회에서 열린 의대정원 증원 저지를 위한 비대위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의협은 14일에도 "의사단체의 단일한 요구는 의대 증원의 원점 재논의"라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연합뉴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이 12일 서울 용산구 의사협회에서 열린 의대정원 증원 저지를 위한 비대위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의협은 14일에도 "의사단체의 단일한 요구는 의대 증원의 원점 재논의"라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는 잇따른 인사 검증 실패와 과도한 거부권 행사, 대파로 상징되는 물가 관리 실패, 도주 대사 임명 등 실책을 거듭해 왔다. 독선과 불통에 대한 불만이 이번 총선에서 투표로 표출된 것도 맞다. 그러나 의료 개혁의 경우 국민의 입장은 압도적인 찬성이었다. 다만 뚜렷한 근거 없이 2000명이란 숫자에 집착하고, 설득과 협의 없이 행정 처분과 의사들에 대한 비난으로 일관하는 정책의 추진 방식에 대한 우려가 컸다. 이런 우려가 다른 정책 실패에 대한 실망감에 더해진 것일 뿐이다. 선거 전체가 오롯이 의대 정원 확대 이슈에 좌우됐고, 더구나 그 결과가 의대 정원 확대를 오로지 거부한 것이란 결론은 아전인수식 해석일 뿐이다.

환자들의 고통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의사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구급차 뺑뺑이를 돌다 숨지는 사례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고 있다. 의사들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만 했을 뿐, 켜켜이 쌓인 의료 현장의 문제에 대해 어떤 대책도 내놓은 게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민심은 의사들 편일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다. 의사들도 증원 백지화만 외칠 게 아니라 열린 자세로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원점 재논의’ ‘1년 유예’ 주장은 지금의 위기만 넘겨 영원히 증원을 막으려는 꼼수라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집단 반발한 전공의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의료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15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이 응급환자를 급히 이송하고 있다. 김성태 기자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집단 반발한 전공의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의료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15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이 응급환자를 급히 이송하고 있다. 김성태 기자

정부도 침묵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오는 25일이면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낸 지 한 달을 채워 법적으로 언제든 병원을 떠날 수 있게 된다. 의대생 유급 시한도 코앞이다. 내달 입시요강을 발표해야 하는 대학들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수험생과 학부모도 하루하루가 초조하다. 더 시간을 지체하면 의대 정원 확대 실패를 넘어 의료체계 붕괴와 입시제도 대혼란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

사태를 풀려면 우선 2000명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증원 규모는 의사들과 협의해 유연하게 결정하겠다고 천명해야 한다. 대화를 위해 의사들에 대한 징계부터 풀어야 한다. 아울러 밀실 협의가 되지 않도록 환자와 전문가를 협상에 포함해야 한다. 지레 포기해서 어렵게 지핀 의료개혁의 불씨를 꺼뜨리지는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