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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세 인하 유지” 9번째 연장…IMF 권고와 달리 만성화

중앙일보

입력

지난 12일 서울 시내 한 알뜰주유소 판매가격 게시판에 휘발윳값이 L당 1798원을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서울 시내 한 알뜰주유소 판매가격 게시판에 휘발윳값이 L당 1798원을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휘발유·경유 등 석유류에 붙는 유류세(油類稅) 인하 조치를 또 연장하기로 했다. 이번이 9번째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민생 부담이 가중하지 않도록 현재 유류세 인하 조치를 6월 말까지 2개월 추가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악화한 ‘중동 사태’와 관련해서다.

정부는 2021년 11월부터 유류세 한시 인하 조치를 시행 중이다. 현재 휘발유 기준 유류세는 L당 615원이다. 인하 전(820원)과 비교해 L당 205원(25%) 낮다. 경유는 L당 369원(37% 인하), LPG 부탄은 L당 130원(37% 인하)이다. 14일 기준 L당 전국 평균 휘발윳값은 1687원, 경윳값은 1558원. 연비가 L당 10㎞인 차로 하루 40㎞를 달릴 경우 월 유류비가 2만5000원가량 덜 드는 셈이다. 정부는 이런 내용의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시행령 개정안과 개별소비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오는 17일 각각 입법예고 할 예정이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정부가 유류세를 내릴 수밖에 없는 건 치솟는 물가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2%대 물가 상승률을 목표로 내걸며 ‘국제유가 안정’을 전제로 달았다. 하지만 최근 중동 사태로 국제유가가 들썩이고 있다. 과일·채소 등 먹거리 중심으로 고물가가 지속하는 상황에서 유류세마저 환원할 경우 가까스로 틀어막은 물가가 튈 수 있다.

하지만 ‘한시’ 인하란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조치를 남발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먼저 세수(국세 수입) 감소가 불가피하다. 유류세를 포함한 교통·환경·에너지 세수는 2018년 15조3000억 원에서 2021년 16조6000억 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유류세를 내린 뒤 지난해 10조8000억 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유류세를 내린 효과가 물가 부담이 큰 저소득층보다 고소득층에 더 집중되는 측면도 있다. 소득이 높을수록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비율이 높고, 차량 배기량(cc)도 많다. 유류세 인하에 따른 혜택을 더 많이 누린다는 의미다. 소비자단체는 일선 주유소가 휘발유 판매 가격을 유류세 인하분보다 훨씬 적게 내린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번 유류세 인하 연장 조치는 국내외 유류 가격 불확실성이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라는 게 기재부의 설명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기름값은 소비자가 민감하게 여기는 물가의 ‘바로미터’”라며 “정부가 세수 부족에도 불구하고 유류세 인하 조치를 연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은 2022년 펴낸 ‘에너지·식품 고물가의 사회적 파급 효과 완화를 위한 재정 정책(Fiscal Policy for Mitigating the Social Impact of High Energy and Food Prices)’ 보고서에서 유류세 인하가 환경오염과 기후위기 심화를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을 왜곡해 효율적인 자원 이용을 저해할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IMF는 “유류세 인하를 최후의 수단(last resort)으로 고려하라”며 “차라리 유류세 세수를 국민에게 지원하는 편이 더 낫다”고 제언했다.

황인욱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유류세를 내릴 경우 4개월 이내에 효과가 정점에 이른 뒤 감소하기 시작해 시행 1년 이후로는 (물가 안정) 효과가 거의 없고, 세수 감소뿐 아니라 부정적 외부 효과가 높아질 수 있다”며 “(유류세 인하 같은) 가격 통제 정책은 최대한 인하 폭을 적용해 단기간(6개월 이내) 집중적으로 시행해야 물가를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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