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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세진 거야 '입법 브레이크'…정부, 감세정책∙노동개혁 불투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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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총선 선대위 해단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총선 선대위 해단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경제 정책의 ‘레임 덕(lame duck·임기 말 권력 누수)’ 속도가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4·10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하면서다. 기존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 상황에서 자주 반복한 ‘당정 경제 정책 드라이브→거야(巨野) 주도 입법 브레이크→정책 불발’ 구도를 재현할 수 있다.

당장 정부가 추진하는 감세(減稅) 정책이 무더기로 ‘소화불량’에 빠질 위기다. 대부분 정책이 총선 이후 입법을 전제한 만큼 야당이 주도하는 국회에서 상당 부분 ‘원점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 지원, 연구개발(R&D) 투자 세액공제 확대, 임시투자세액공제(임투) 일몰 연장, 부가가치세 간이과세자 기준 상향 등이 대표적이다. 야당이 해당 법안 다수에 대해 “부자(대기업) 감세”라며 반대하는 만큼 국회 통과가 불투명하다.

한국 증시 저평가를 뜻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해소하고자 정부가 발표한 증시 밸류 업(가치 상향) 대책도 제동이 걸렸다.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기업 법인세 완화, 배당소득세 인하 등 법을 바꿔야 하는 내용이라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감세에 부정적인) 야당도 주주환원 확대, 지배구조 개편 등을 주장한 만큼 여야 이견을 조율하는 정부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정부가 밀어붙인 ‘노동 개혁’의 주도권은 사실상 야당으로 넘어갔다. 근로시간제 유연화부터 중대재해처벌법 보완, 실업급여 개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 상당수 과제가 야당과 협조해야 할 법 개정 사항이다. 오히려 야당은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한 차례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을 다시 추진할 동력을 얻었다. 주 4.5일제 도입,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등 총선 기간 내건 공약도 순차적으로 추진할 전망이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정부가 우선순위에 있는 노동 개혁 과제를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려 공감대부터 얻은 뒤 정치권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격적으로 추진한 부동산 규제 완화도 발목이 잡혔다. 야당과 경제 정책 운용에서 시각이 크게 다른 항목이라서다. 정부는 총선 기간 재건축 규제 완화, 다주택자 중과세 폐지, 공시가격 현실화 폐지 등을 발표했다. 역시 법 개정 사안이라 야당의 협조가 필수다. 과거 정부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는 주택의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겠다고 했다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적용을 3년 유예하는 ‘반쪽 정책’으로 전락한 전례가 있다. 다만 과거와 달리 부동산 경기가 침체한 만큼 야당이 무조건 반대만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재건축 안전진단 완화 등은 야당에서도 공감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 정책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의 ‘건전 재정’ 기조도 흔들릴 전망이다. 야당은 국민 1인당 25만원씩 ‘민생회복지원금’을 지급하려면 13조원이 필요하다며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요구해 왔다. 간병비 건강보험 급여화, 경로당 무상급식 등 여야를 막론하고 내건 ‘실버 공약’까지 추진할 경우, 가뜩이나 악화한 재정이 무너질 수 있다.

범야권이 이번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정부의 경제정책마저 국회가 좌지우지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범야권이 세법·예산·정책 등 모든 사안에 압도적인 주도권을 쥐면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정운영 추진력이 약해져 국회를 통한 법안 처리가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다만 총선 전 밝혔듯 제로 베이스(원점)에서 정책과제·공약의 우선순위를 가린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상반기에 ‘실탄(재정)’을 쏟아부은 만큼 총선 이후 정책 여력이 제한적”이라며 “돌발 변수가 가져올 충격을 최소화하려면 잔뜩 받아든 ‘포스트 총선’ 청구서 가운데 재정을 꼭 필요한 데만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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