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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소홀’과 현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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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방현 기자 중앙일보 내셔널부장
김방현 내셔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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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권·관권 개입 논란은 선거 때마다 등장한다. 중앙 또는 지방 권력이 현금을 뿌리거나 선심성 정책을 노골적으로 내놓는 걸 말한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관권선거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 토론회를 연 것과 사전투표 첫날 부산을 찾은 것 등을 사례로 들었다. 윤 정부는 이것 말고도 몇 가지 현금 혜택성 정책을 내놨다. 소상공인 대출이자 1200억원 환급, 영화 관람료에 부과하던 입장권 부담금(관람료의 3%) 폐지 등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에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다.

2020년 5월 대전 지역화폐(온통대전) 출시 기념식이 열렸다. 지역화폐를 사용하면 일정 비율의 현금을 돌려준다. [사진 대전시]

2020년 5월 대전 지역화폐(온통대전) 출시 기념식이 열렸다. 지역화폐를 사용하면 일정 비율의 현금을 돌려준다. [사진 대전시]

왜 그런지는 문재인 정권 때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문 정권과 민주당이 장악한 지방 권력은 ‘역대급’으로 돈을 뿌렸다. 당시는 코로나19 사태 극복이라는 그럴듯한 명분도 있었다. 지역화폐(지역 상품권) 발행 등 코로나19와 직접 관련이 없는 현금 혜택도 많은 국민이 누렸다. 규모도 엄청났지만, 지급 방식도 윤 정부와 달리 피부와 와 닿게 했다. 바로 개인별 계좌 입금이었다.

대전시 재난지원금도 그중 하나였다. 대전시는 2020년 4~5월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을 나눠주면서 가용(可用) 재원을 거의 털었다. 정부 재난지원금 중 대전시가 부담해야 할 예산은 555억원이었다. 대전시는 재해구호기금과 예비비 등으로 이 돈을 마련했다. 또 민간보조사업비 일부를 삭감해 재난지원금으로 돌려쓰고, 그래도 모자라자 지방채까지 발행했다. 대전시는 당시 정부 재난지원금만으로는 부족했던지 대전형 긴급재난생계지원금을 별도로 지급했다. 여기에만 약 700억원을 썼다.

지역화폐도 현금 나눠주는 데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지역화폐는 사용한 금액의 일정 비율(7~10%)을 현금(세금)으로 돌려주는 구조다. 대전시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지역화폐인 온통대전 예산으로 국비 등 4701억원을 투입했다. 지역화폐는 대전은 물론 전국 대부분의 자치단체가 도입했다. 몇 년간 해마다 국가 예산 수조원이 지역화폐에 쓰였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와 2022년 6월 국민의힘으로 교체된 지방 권력은 이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세금낭비 성격이 있어서였다.

윤 정부 집권 이후 “왜 재난지원금이나 지역화폐 같은 돈을 안 주냐”는 목소리가 퍼졌다. 일종의 금단현상 처럼 일단 현금 맛을 보면 끊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게 이번 총선의 ‘민생 소홀’ 논란을 더 달구었을지 모른다.

이런 가운데 문 전 대통령이 선거판에 갑자기 등장해 “칠십 평생에 이렇게 못하는 정부는 처음 본다”라며 윤 정부를 겨냥했다. 많은 사람이 문 전 대통령의 이런 행태를 비판했지만, ‘현금 나눠주기’ 만 놓고 볼 때 그의 주장이 그럴싸해 보인다. 물론 이런 식의 현금 포퓰리즘은 나라 살림살이와 국민정신을 망가뜨리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