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발생한 대만 지진의 여파가 한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에 미칠 영향이 주목을 받고 있다. 지진으로 중단됐던 TSMC와 마이크론의 생산 시설이 대부분 복구됐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협상력이 더 커져 실적 반등에 긍정적일 것이란 전망이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 마이크론이 2분기 D램·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등 메모리 반도체 제품 가격을 순차적으로 25%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고객사에 전했다고 9일 보도했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은 세계 3위(지난해 4분기 점유율 19.2%) D램 업체로 대만에 D램 공장을 두고 있다. 마이크론은 3일 지진 직후 고객사에 2분기 제품 견적 제공을 중단했다. 지진 피해에 따른 손실 등을 점검한 뒤 가격 협상을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D램 가격 협상을 일시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은 반도체 가격도 흔든다
반도체 가격은 과거에도 자연재해나 사고 이후 대체로 급등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직후 D램·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현물가격이 단기적으로 20% 이상 치솟기도 했다. 생산 차질로 공급량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대만 지진 피해가 복구되고 생산이 재개됐지만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피터 리 씨티그룹 애널리스트는 “대만은 전 세계 D램 생산능력의 약 15%를 차지한다”면서 “지진과 관련된 혼란으로 인해 계약 가격 협상 영향력이 고객에서 제조업체로 이동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D램 가격 힘겨루기 시작
다만 최근 D램 가격이 정체 상태여서 당분간 가격 등락을 두고 힘겨루기가 벌어질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의 평균 거래가격은 석 달째 1.8달러에 머물러 있다. 2021년 7월 이후 줄곧 하락했던 D램 가격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주요 공급업체의 감산과 재고 소진으로 지난해 10월부터 4개월 연속 오른 뒤 2월부터 상승세를 멈췄다. 정보기술(IT) 기기 수요가 여전히 저조하지만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여전히 감산 중인데다 지진을 계기로 가격 변동이 일어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2분기 실적, 더 좋아지나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이 같은 가격 인상 흐름에 동참한다면 지난 2년 동안 바닥을 기었던 메모리 가격도 크게 뛸 가능성이 있다. 이는 이들 기업의 영업이익과 직결된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대만 지진 영향으로 인해 메모리 부문의 실적 전망치가 더 상향조정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앞서 삼성전자는 올 1분기 ‘반도체의 봄’에 힘입어 영업이익 6조6000억 원을 잠정 공시했다. 전년 동기보다 931% 높은 수준이다.
범용 제품인 D램 이외에도 AI(인공지능) 칩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같은 새 먹거리가 힘을 보태고 있어, 2분기 전망은 더 긍정적이다. SK하이닉스는 5세대 HBM3E를 양산해 엔비디아에 본격적인 납품을 시작했다. 관련 매출이 2분기부터 반영된다. 삼성전자 역시 HBM 이외에도 칩과 칩 사이를 연결해 성능을 높여주는 첨단 패키징 서비스를 앞세워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와 별도의 공급 협의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분야에서 압도적 선두를 달리던 TSMC의 패키징 공급량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일부 물량이 삼성으로 향할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