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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는 국교 끊었다…에콰도르 전례없는 '부통령 체포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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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국가 에콰도르 정부가 전직 부통령을 체포하기 위해 자국 주재 멕시코 대사관에 강제 진입한 일로 외교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멕시코가 국교 단절을 선언한 데 이어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주요 국가들이 에콰도르를 강력하게 규탄하고 나섰다.

다니엘 노보아 아신 에콰도르 대통령. EPA=연합뉴스

다니엘 노보아 아신 에콰도르 대통령. EPA=연합뉴스

지난 5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이날 에콰도르와의 국교를 단절한다고 밝혔다. 이날 에콰도르 경찰이 자국 주재 멕시코 대사관의 출입구를 부수고 강제로 진입해 호르헤 글라스 전 에콰도르 부통령을 체포한 데 따른 조치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X(옛 트위터)를 통해 "에콰도르 경찰이 우리 대사관에 강제 진입해, 박해로 망명 절차를 밟고 있던 그 나라 전 부통령을 구금했다"며 "국제법과 멕시코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이어 알리시아 바르세나 멕시코 외교장관 또한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의 명백한 위반, 멕시코 외교관들이 입은 부상 등을 고려해 에콰도르와의 외교 관계 즉각적 단절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 EPA=연합뉴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 EPA=연합뉴스

1964년 발효된 빈 협약은 외교 공관의 권한을 규정한 것으로, '공관은 공관장의 동의 없이 들어갈 수 없는 불가침 지역'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AP통신은 "빈 협약을 어기는 대사관 진입은 그간 중남미에서 크게 비판받아온 (권위주의) 정부들조차 꺼리는 일"이라며 "전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에콰도르 당국이 외교적 마찰을 불사하며 체포한 호르헤 글라스는 2013~2018년 좌파 성향의 라파엘 코레아 전 대통령(2007~2017), 레닌 모레노(2017~2021) 전 대통령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인사다. 2016년 마나비주(州) 지진 피해 복구비를 횡령한 혐의를 받자 지난해 12월 멕시코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에콰도르 정부는 멕시코에 글라스 전 부통령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으나,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정치적 박해'라는 이유로 반대하며 양국 간 외교 갈등이 불거졌다.

멕시코의 항의에 다니엘 노보아 아신 에콰도르 대통령실은 성명을 내고 "(멕시코 측이) 전 부통령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통상적인 법적 틀에 반해 망명을 허용한 것은 외교사절단에 부여된 면책특권을 악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횡령 혐의로 체포된 호르헤 글라스 전 에콰도르 부통령. AP=연합뉴스

횡령 혐의로 체포된 호르헤 글라스 전 에콰도르 부통령. AP=연합뉴스

CNN은 "양국 관계는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에콰도르 대선 결선투표를 두고 '매우 이상한 방식으로 이뤄진 선거'라고 비판한 이후, 에콰도르 정부가 자국 주재 멕시코 대사를 '외교적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하며 멀어져 왔다"고 설명했다. 좌파 성향의 오브라도르와 중도우파 다니엘 노보아 아신 에콰도르 대통령 사이에 일던 갈등이 이번 일로 폭발했다는 분석이다.

"정치적 야만"...중남미 국가들 일제히 규탄

'대사관 급습'이라는 전례 없는 일에 중남미 국가들은 좌·우파를 막론하고 일제히 에콰도르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 6일(현지시간) 에콰도르 주재 멕시코 대사관 앞에서 호르헤 글라스 전 에콰도르 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6일(현지시간) 에콰도르 주재 멕시코 대사관 앞에서 호르헤 글라스 전 에콰도르 부통령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은 6일 에콰도르 정부가 "네오파시스트적인 정치적 야만 행위"를 저질렀다고 비판하며 외교 단절을 선언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에콰도르의 행동을 "가장 강력한 수준으로" 규탄한다며 오브라도르 대통령에 지지를 표했다. 온두라스는 중남미 30여 개 국이 참여하고 있는 중남미·카리브 국가공동체(CELAC)의 긴급 소집을 요청했고, 아르헨티나·우루과이·페루·베네수엘라·쿠바·칠레 등 다른 중남미 국가들도 비판 행렬에 동참했다.

미국 싱크탱크 미국외교협회(CFR)의 윌 프리먼 라틴아메리카 연구원은 "이번 대사관 강제 진입으로, 내년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인기를 끌어오려는 노보아 대통령이 법치를 무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에콰도르에서는 지난해 10월 기예르모 라소 전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중도 하차하며 재보궐 선거 격의 대선이 치러져 노보아가 당선됐다. 다음 대선이 내년 5월에 치러지는 탓에 재임 기간이 약 18개월에 불과한 노보아 대통령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올해 36세인 다니엘 노보아 아신 대통령은 바나나 무역 재벌가 출신으로, 취임 직후 '갱단과의 전쟁'을 시작해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지도자 중 최연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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