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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재킷 입고 마약 갱단과 전쟁…재벌집 MZ대통령의 분투[후후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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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현지시간) 가죽 재킷을 입은 채 카메라를 응시하던 젊은 남성이 군대를 동원해 마약 갱단과의 전쟁을 벌이겠다고 선포했다. "모든 국민이 평화를 되찾을 때까지 협상은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마약 카르텔에 보내는 경고였다.

마약 카르텔에 이런 '공개 경고'을 보낸 인물은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이다. 36세인 그는 전 세계 국가 지도자 중 최연소로 꼽힌다. 재벌가 맏아들인 그의 지도력이 요즘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취임 후 한 달여 만에 에콰도르가 초유의 치안 불안 사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다니엘 노보아(36) 에콰도르 대통령이 지난 8일(현지시간) 마약 갱단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다니엘 노보아(36) 에콰도르 대통령이 지난 8일(현지시간) 마약 갱단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마약 갱단 잡아들이는 재벌가 맏아들  

에콰도르에선 최근 영화에서나 볼법했던 충격적인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악명 높은 마약 갱단 로스 초네로스의 두목 아돌포 마시아스가 탈옥하는가 하면, 교도소 7곳에 수감된 갱단 조직원들이 폭동을 일으켜 교도관과 직원 170여 명을 인질로 붙잡은 사건도 발생했다.

뿐만 아니다. 갱단 조직원들이 뉴스 생방송 중 난입해 진행자를 총으로 위협하고, 대법원장 자택 앞에선 폭탄이 터졌다. 에콰도르는 몇 년 사이 남미산 마약 유통 관문으로 전락하면서 '갱단들의 천국'이 됐다.

지난해 11월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과 그의 부인 라비니아 발보네시. A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과 그의 부인 라비니아 발보네시. AP=연합뉴스

이에 노보아 대통령은 군과 경찰에 마약 갱단 22곳에 대한 해체 작전을 명령했다. 17일까지 1000명 넘는 병력을 투입해 갱단 조직원 1400여 명을 잡아들였다. 갱단의 뒤를 봐주는 경찰과 교도관, 판검사들을 향해 엄벌을 예고했다. 장갑차를 동원해 폭동을 일으킨 수감자들을 진압하고, 마약 밀매와 살인 등의 혐의로 34년형을 선고받고 탈옥한 마시아스의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민에겐 60일간 오후 11시부터 다음 날 오전 5시까지 통행금지도 명령한 상태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노보아가 갱단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가죽 재킷을 입은 건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했다. 노보아는 평소 분명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스타일로 매일 새벽 운동을 즐긴다고 알려졌다.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노보아는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지 2년 만인 지난해 10월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뉴욕대 경영학 학사,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 등 미국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노보아 대통령의 아버지 알바로 노보아는 바나나 사업으로 1조원이 넘는 재산을 일궈 에콰도르에서 가장 부유하다고 알려졌다.

국회의원이기도 했던 알바로는 그간 대선에 다섯 번 도전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아들이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룬 셈이다. 노보아는 대선을 앞두고 나온 각종 여론조사에서 5위권 밖이었지만, '갱단 소탕'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신자유주의 경제를 표방하며 막판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 9일 에콰도르에서 생방송 중 난입한 갱단 조직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경찰이 출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9일 에콰도르에서 생방송 중 난입한 갱단 조직원들을 체포하기 위해 경찰이 출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강력 범죄와 경제난에 지친 국민의 선택  

에콰도르 국민이 그를 선택한 배경엔 극도의 치안 불안이 있다. 에콰도르는 한때 '남미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통하며 미국 중산층 은퇴자들에게 최고의 이주 장소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주요 코카인 생산국인 콜롬비아와 페루 사이에 끼어 있는 에콰도르는 2000년대 후반부터 유럽, 북미로 가는 마약 거래 통로로 이용되며 갱단 간 이권 다툼의 한복판에 놓였다.

좌파 반미 성향의 라파엘 코레아 전 대통령 집권(2007~2017) 당시 미 마약단속국과의 협력을 중단하자 갱단들이 더욱 활개를 쳤다. 에콰도르 갱단들은 그사이 규모를 키워 코카인 대형 유통업자가 됐다. 로이터통신 등은 "치안이 빠르게 악화한 에콰도르의 살인율은 2017년 10만 명당 5명에서 2023년 46명으로 치솟아 남미 최고 수준"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8월엔 마약 밀매 조직을 비판했던 대선 후보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가 유세 중 암살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지난 14일 에콰도르 교도소에서 경찰과 군인이 폭동을 일으킨 재소자들을 진압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4일 에콰도르 교도소에서 경찰과 군인이 폭동을 일으킨 재소자들을 진압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노보아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선 공약을 거침없이 실행에 옮겼다. 8000명 이상의 조직원을 보유한 마약 갱단 로스 로보스의 두목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고, 이전 좌파 정부가 제정한 소량의 마약 소지에 대한 면죄부 조항도 전격 폐지했다. 또 조직원들의 교도소 내 폭동 예방을 위해 대형 교도소 2곳을 추가 건설해 수감자를 분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외신은 노보아 대통령이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43) 대통령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부켈레 대통령이 2019년 취임 후 강력한 갱단 소탕 정책을 펼친 결과 엘살바도르의 지난해 살인 범죄 발생 건수는 전년보다 70%가량 감소했다.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방탄조끼를 입고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방탄조끼를 입고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노보아 대통령의 일자리 창출, 해외 투자 유치 공약 등도 경제난에 지친 에콰도르 국민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에콰도르의 빈곤율은 27%로 중남미 최빈국 중 한 곳이다. 재정난 악화로 2020년엔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했다.

코레아 정권의 포퓰리즘 정책 여파로 경제가 고질적인 저성장에 빠졌단 지적이다. 2021년 친시장 정책을 표방한 우파 성향의 기예르모 라소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야당의 거센 반발로 그가 추진한 경제 정책들은 잇따라 좌절됐고 탄핵 위기에 몰려 결국 그는 대통령 잔여 임기를 포기했다. 이에 지난해 보궐 성격의 대선을 치러 노보아가 당선됐다.

Z세대 부인은 유명 인플루언서…재선도 노린다 

M세대인 노보아 대통령의 부인 라비니아 발보네시는 26세로 세계 첫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 출생) 영부인으로 불린다. 젊고 화려한 외모와 패션 감각으로 에콰도르에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발보네시는 영양 전문가로 인기 인플루언서였다. 2019년 노보아의 개인 영양사로 고용되며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2021년 결혼했으며 발보네시는 지난 16일 둘째를 출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보아 대통령은 2019년 이혼한 전처와의 사이에선 딸이 한 명 있다.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오른쪽)이 그의 부인 라비니아 발보네시, 아들과 함께 있는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오른쪽)이 그의 부인 라비니아 발보네시, 아들과 함께 있는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노보아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지만, 그의 앞엔 험난한 길이 예고돼 있다. AP통신은 "일시적인 질서 회복은 쉬울 수 있지만, 에콰도르의 마약 카르텔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건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지난 17일엔 갱단 조직원들의 생방송 난입 사건을 수사하던 현직 검사가 대낮에 피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또 보궐 선거로 당선된 그의 임기는 18개월로 심각한 치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엔 짧은 편이다. 물론 노보아 대통령은 2025년 대선을 통해 재선하려 한다. 그는 현지 언론에 "(갱단 소탕은) 짧은 시간에 해결이 어렵다는 걸 안다.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한 뒤 재선을 통해 (에콰도르를) 변화시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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