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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공백 속 AI까지 동원 확전…양측 사망자만 3.4만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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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호 10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6개월

지난 3일 폐허로 변한 가자지구 내 최대 규모의 의료 시설인 알시파 병원 인근 지역에서 한 주민이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3일 폐허로 변한 가자지구 내 최대 규모의 의료 시설인 알시파 병원 인근 지역에서 한 주민이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상황이 개전 6개월(7일)을 앞두고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한 즉각적인 휴전 등 조치가 없으면 대 이스라엘 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사실상 최후 통첩이라는 평가다. 지난 1일 가자지구에서 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CK)의 차량들이 이스라엘군 드론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뒤 첫 통화다. 당시 미국·캐나다 이중 국적자와 영국·폴란드·호주·팔레스타인인 등 7명이 숨졌다. WCK는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기관이다.

WCK 피격과 민간인 다량 피해를 비롯한 가자지구의 비극적 상황은 이번 전쟁과 관련해 국제사회가 직면한 ‘5대 공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첫 번째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강경파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통제 공백이다.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까지 나서 이스라엘 측에 국제법을 준수하고 가자지구 민간인 보호 대책을 강구하면서 인도주의 지원을 늘리라는 요구를 계속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100만 주민이 피란한 가자 접경도시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지상공격 계획 철회를 요구했지만 네타냐후는 귀를 막아왔다.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이스라엘을 외교·군사적으로 지원하며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며 이스라엘에 불리한 결의를 막아왔으며, 2023년 38억 달러 등 매년 거액의 군사 원조를 해왔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직후인 지난해 10월 20일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에 140억 달러의 추가 무기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가자지구에서만 3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기아·의료붕괴 등 인도주의 참사에 이어 미국인이 포함된 구호 요원까지 숨지면서 국제적 비난이 봇물을 이루는 데다 미국 내 여론도 심상치 않다. 11월 대선을 앞둔 바이든이 득표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되는 이유다. 현재까지 이 전쟁으로 숨진 사람은 양측 모두를 합해 3만4000명을 넘어섰다.

둘째, 교전규칙 공백이다. 특히 대량살상을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인공지능(AI) 전쟁시스템까지 실전에 본격적으로 투입돼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3일 복수의 정보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군 디지털전 핵심인 8200부대가 ‘라벤더’로 불리는 AI 기반 데이터베이스를 개발해 실전에 투입했다고 보도했다. 라벤더는 하마스 및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PIJ) 무장대원 등 3만7000명을 타격 목표로 설정하고, 각종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이들이 머물 가능성이 큰 장소를 찾아낸다.

가디언은 AI 전쟁 시스템이 참전 군인들을 통계적 메커니즘을 통해 더욱 냉혹하고 쉽게 민간인 공격에 내몰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셋째, 의료 공백이다. 이번 전쟁의 또 다른 특징은 많은 병원이 공격을 받거나 전기·물·물품 부족으로 가동을 중단했다는 사실이다. 비정부 인도주의 단체인 국제구호위원회는(IRC)에 따르면 가자지구는 현재 의료붕괴 상황에 직면했다. 전쟁 전 36개의 병원이 운영됐지만 현재는 12개가 겨우 부분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아랍권 인터넷 뉴스 사이트인 더뉴아랍은 130여 대가 있던 구급차도 이제는 6대만 남았다고 보도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지난 1월에 가자지구의 3500여 병상 중 1400여 개만 가동되고 있다고 밝혔다. 만성질환자와 임산부 등에 대한 의료 서비스는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넷째, 중동 지역의 세력 공백이다. 네타냐후는 지난해 10월 7일의 하마스 공격을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세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군사력과 과학기술력·경제력·외교력 우위를 앞세워 모든 면에서 열세인 하마스는 물론 이스라엘 안보를 위협해온 지역 내 친이란 세력까지 이 기회에 무력화하겠다는 기세다. 현재의 국제·중동 상황은 네타냐후에게 유리한 ‘꽃놀이패’로 보인다.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은 물론 우크라이나와 3년째 전쟁 중인 러시아도 네타냐후를 강하게 비난하기가 쉽지 않다. 이스라엘에는 옛소련·러시아에서 이주한 주민이 유대인 약 90만 명에 비유대인 가족까지 합치면 약 155만 명이 거주한다. 이는 전체 인구 990만 명의 약 16%에 해당한다. 서로 상대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유다.

중동 정세도 마찬가지다. 반이스라엘·반미 세력이 규합해 이스라엘을 위협하려면 이슬람 세계나 중동 지역의 지지와 함께 안정적인 국내 상황, 충분한 자금·무기·병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어느 국가나 세력도 이를 충족하지 못한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스라엘의 숙적이 된 이란은 제재로 인한 경제난에 이어 2022년 히잡 시위 이후 사회 갈등까지 겪고 있다. 국경을 맞댄 시리아는 내전 후유증으로 기력을 잃었으며,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는 경제난과 국정 혼란으로 밖으로 눈을 돌릴 여력이 없다. 예멘의 시아파·친이란 후티 반군도 이란이 지원한 것으로 보이는 미사일로 민간 선박이나 위협할 뿐 이스라엘을 직접 위협할 수단은 태부족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자국 서북부 타북 주에 네움 신도시를 건설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려면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스라엘의 협력이 절실하다. 게다가 사우디는 지난 2014년부터 국경을 맞댄 예멘의 친이란 후티 반군에 맞서 전쟁을 치러왔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적의 적’에 해당한다. 상황이 이렇게 복잡하다 보니 과거 1940~70년대 중동전쟁 때처럼 아랍세력이 힘을 합쳐 이스라엘에 군사적으로 대응하거나, 이슬람권 산유국들이 담합해 유가를 천정부지로 올려 세계 경제를 뒤흔들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다섯째, 사태 해결 방안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카타르의 중재로 카이로·도하에서 하마스 측과 마주 앉지만 협상은 계속 ‘되돌이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도 서안지구만 통치할 뿐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지구에는 입김이 미치지 못한다. 유엔·서구세력·중동세력 모두 그 흔한 평화유지군 파병도, 완충 지역 설치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누구도 옴짝달싹 못 하는 ‘무간도’ 상황에서 가자지구에선 오늘도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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