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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국회 완전 이전, 선거철 깜짝 공약 안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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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

서울 여의도에 있는 국회를 몽땅 세종특별자치시로 이전하자는 공약이 총선 판에 메가톤급 이슈로 떠올랐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회의 전부 이전과 세종시의 ‘정치·행정 수도’ 완성을 공약하면서다. 민주당은 국회의 세종 이전엔 공감하면서도 선거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국회의 완전 이전에 기대를 거는 국민도,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갖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이제 선거 이슈를 떠나 미완에 그친 행정수도 문제를 진지하게 짚어볼 때가 됐다.

수도권 과밀과 지방소멸 ‘이중고’
나라 미래 위한 마지막 골든타임
국민투표 등 정치적 부담 각오를

[사진 연합뉴스]

[사진 연합뉴스]

우선, 수도권 쏠림의 심각한 양상이다. 2002년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제시할 무렵 수도권 인구는 전체의 47.1%였다. 하지만 지난해엔 과반(50.7%)을 넘겼다. 이대로 방치하면 수도권 과밀과 지방 소멸이라는 이중고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금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마지막 골든 타임일 수 있다. 정치·행정 수도의 완성은 그만큼 필요하다.

국정의 비효율도 심각하다. 2019년 국토연구원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세종시 행정부처 공무원은 연간 2만회 국회 출장으로 127억원을 길거리에 낭비했다. 출장비는 여비·교통비·시간비용을 합친 금액이다. 더구나 국정 비효율은 경제적 비용에 국한하지 않는다.

국정의 질적 저하도 심각한 수준이다. 코로나19와 복합위기 상황을 겪으며 정부의 대처 역량이 시험대에 올랐다. 창의적 대안을 짜내기 위해서는 얼굴을 맞대고 하는 치열한 집단토론이 필요한데, 고위직 공무원들이 서울 국회 출장으로 한자리에 모이기 어렵다. 이처럼 계량하기 어려운 비용까지 합하면 국정 손실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서울과 지방의 상생이란 측면도 있다. 2002년에는 수도권 집중 억제를 통한 지역균형발전을 강조했다. 자연스럽게 수도권 반발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서울과 세종의 상생을 통한 지역균형발전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서울은 런던·싱가포르·홍콩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금융·문화 중심지’로 만들고, 세종시는 자족성을 갖춘 정치·행정 수도로 완성해나가는 구상이다. 이렇게 되면 세종의 이득이 서울의 비용이 되는 ‘제로섬 게임’을 면할 수 있게 된다. 도시마다 개성을 살려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전략이다. 물론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지는 미지수다.

사실 국회의 전부 이전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추진했으나 서울과 세종의 상생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2020년 11월 민주당은 국회의장실과 본회의장만 남기고 국회를 전부 이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최종 결정된 내용을 보면 국회 상임위원회 18개 중 12개 이전에 그쳤다.

그러는 사이에 세종시는 지역균형발전의 거점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세종시의 전국 비중은 여전히 1%에 미달한다. 세종시의 인구 비중은 0.75%(2023년 말), 국내총생산의 0.67%(2022년 말)에 그쳤다. 입으로는 행정수도 완성을 외쳤으나 실질적인 노력을 쏟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공약의 실현 가능성도 어느 때보다 커 보인다. 이제 세종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 민주당도 국회의 전부 이전을 주장해온 만큼 정치적 합의 가능성도 크다. 그래도 과거와 싸워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은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했으나 실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는 의구심이 없지 않다.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실과 국회의 이전은 ‘관습 헌법’에 위배된다고 위헌 결정했는데, 이것이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여기서 한가지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헌재가 제시한 관습 헌법의 4가지 조건 중에 국민적 합의 부분이다. 국민적 합의가 위헌 여부를 갈랐다는 말이니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은 의미 있어 보인다. 총선 이후 국민 여론을 수렴해 개헌 같은 법적 절차도 각오해야 한다. 국민투표를 두려워하면 정치·행정 수도 공약은 물 건너간다. 국회 전부 이전이 진심이라면 정치적 부담은 감수해야 한다. 모든 공약은 신뢰가 기본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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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혜수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