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만의 허리’ 때린 7.2 강진…137명 고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대만 지진 현장을 가다

3일 대만 동부 화롄(花蓮)시 동남쪽 7㎞ 지점에서 발생한 규모 7.2의 강진으로 9층짜리 톈왕싱 빌딩 한쪽이 붕괴한 채 기울었다. 대만 당국은 이날 밤 톈왕싱 빌딩 고층부에 고립된 22명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이날 지진으로 9명이 숨지고 963명이 다쳤다. 수도 타이베이를 비롯한 대만 전역에서 산사태와 도로 붕괴, 정전 등의 피해가 속출했다. 이번 지진은 2400명의 사망자를 낸 1999년 강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AP=연합뉴스]

3일 대만 동부 화롄(花蓮)시 동남쪽 7㎞ 지점에서 발생한 규모 7.2의 강진으로 9층짜리 톈왕싱 빌딩 한쪽이 붕괴한 채 기울었다. 대만 당국은 이날 밤 톈왕싱 빌딩 고층부에 고립된 22명을 구조했다고 밝혔다. 이날 지진으로 9명이 숨지고 963명이 다쳤다. 수도 타이베이를 비롯한 대만 전역에서 산사태와 도로 붕괴, 정전 등의 피해가 속출했다. 이번 지진은 2400명의 사망자를 낸 1999년 강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AP=연합뉴스]

3일 오전 7시58분(현지시간) 대만 동부 화롄(花蓮)현 화롄시 쉬안위안(軒轅)로. 교차로에서 차량과 오토바이들이 신호를 기다리는 중에 커다란 굉음이 나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력한 진동이 발생하자 도로 옆에 자리한 9층 높이의 톈왕싱(天王星) 빌딩 1층 부분이 먼지를 풍기며 붕괴했다. 이 여파로 건물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60도 정도 한쪽으로 기울어 내렸다. 놀란 행인과 운전자들은 혼비백산해 대피했다. 무너진 빌딩에 갇힌 22명의 시민은 구조대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했지만, 여성 캉(康)은 숨진 채 발견됐다. 톈왕싱 건물의 지진 피해 모습은 대만 시민들이 X(옛 트위터) 등 SNS에 올린 영상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만 현지 매체인 연합보가 전한 화롄 강진 당시 상황이다. 세종시 인구(38만 명)와 비슷한 규모(31만 명)가 거주하는 화롄현에서 이날 오전 7시58분 규모 7.2 강진이 발생했다고 대만 중앙기상국이 전했다. 유럽지중해지진센터와 미국 지질조사국이 측정한 규모는 7.4다. 진앙은 북위 23.77도, 동경 121.67도로 화롄현에서 남남동쪽으로 약 25㎞ 떨어진 지역이다. 지진의 발생 깊이는 15.5㎞다. 궈카이원 전 중앙기상국 지진예측센터장은 “이번 지진으로 방출된 에너지는 원자폭탄 32개와 맞먹는 위력”이라고 말했다.

원폭 32개 위력…“1999년 대지진 악몽 떠올라”

대만에서 3일 발생한 규모 7.2의 강진으로 화롄시의 한 터널 앞 도로가 붕괴돼 낭떠러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만에서 3일 발생한 규모 7.2의 강진으로 화롄시의 한 터널 앞 도로가 붕괴돼 낭떠러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중앙재난대응센터에 따르면 출근 시간대에 발생한 강진으로 이날 오후 10시까지 최소 9명이 숨지고 963명이 다쳤다. 주택은 약 190채가 파손됐다. 이날 오후 현재 고립된 137명에 대한 구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고 당국은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대만 소방당국이 화롄시의 한 터널에 갇혀 있던 70명을 대피시켰다고 밝혔다”며 “이 중엔 독일인 2명도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1999년 9월 21일 중부 난터우(南投)현에서 발생한 규모 7.6의 ‘921 대지진’ 이후 25년 만에 대만에서 일어난 강진이다. 당시엔 심야에 발생한 강진으로 24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진원지와 가까운 동부 화롄현에 집중됐다. 수도 타이베이(臺北)·신베이(新北)·타오위안(桃園) 등도 심하게 흔들렸다. 대만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타오위안 공항 식당에서 만난 직원 장(張)은 “오전에 6~7회 강한 지진을 느꼈다”며 “921 대지진 당시의 악몽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신베이시의 한 시민은 “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지고 부서지는 소리에 놀라 감히 움직이지를 못했다”며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921 대지진보다 더 끔찍했다”고 대만 EBC방송에 말했다. 이날 오전 타이베이에서 남동부 타이둥 즈번행 열차가 화롄 지역을 지나는 중에 지진을 맞은 훙(洪)은 “열차가 심하게 흔들리고 주변의 산이 무너져 내렸다”며 “휴대전화에 지진과 쓰나미 경보가 울리면서 기차가 쓰나미에 삼켜질까 봐 무서웠다. 재난 영화 같았다”고 말했다.

대만 수도 타이베이의 위성도시 중 하나인 신베이에서도 건물들이 붕괴돼, 구조대원들이 건물 더미 위에서 생존자들의 탈출을 돕고 있다. [신화·AFP=연합뉴스]

대만 수도 타이베이의 위성도시 중 하나인 신베이에서도 건물들이 붕괴돼, 구조대원들이 건물 더미 위에서 생존자들의 탈출을 돕고 있다. [신화·AFP=연합뉴스]

타이베이 기차역은 화롄행 열차 운행이 막히면서 예매표를 반환하려는 줄이 길었다. 역사에는 오늘 사용하지 못한 열차표를 1년 내 언제라도 환불한다는 안내판이 내걸렸다. 지하철 입구에는 지진 영향으로 열차가 연착할 수 있으니 양해를 바란다는 안내문도 보였다. 화롄이 고향이라는 옌(閻)은 “진원이 깊어 7.2 진도에 비해 피해가 적었다”며 “빨리 열차 운행이 재개돼 대피한 가족을 만날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대만 싼리(三立)신문 기자는 “타이베이는 진도 5까지 흔들렸지만 큰 피해는 없어 다행”이라며 “교외 선로가 파손돼 복구까지 시간이 걸릴 전망”이라고 말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지진 여파는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8시까지 규모 3.3~6.5의 여진이 약 200회 일어났다. 대만 기상국은 앞으로 3~5일 안에 규모 6.5~7.0의 여진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대만은 지진 활동이 활발한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지진대에 속해 있다.

대만은 82년 건축법을 강화해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고, 99년 강진 이후 부실 공사를 막기 위해 더욱 노력하면서 건물 대다수가 완전히 붕괴하는 상황을 맞지는 않았다. 화롄시의 톈왕싱 빌딩처럼 기울어지기만 하거나, 멀쩡한 모습을 보인 건물도 많았다. AFP통신은 “엄격한 건축 규제와 광범위한 재난 안전의식 덕분에 큰 재앙은 피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지진으로 인해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의 신주(新竹) 공장 직원들은 절차에 따라 대피했다가 복귀했다. 이로 인해 일부 반도체 생산이 한동안 중단됐다. 이 회사의 주가는 이날 장 초반 약 1.5% 떨어졌지만 생산 재개 소식에 낙폭을 줄였다. TSMC는 애플·엔비디아·퀄컴 등에 반도체 칩을 공급하고 있다. 이번 강진으로 자칫 생산 차질이 빚어지면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