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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최대 화두 된 물가…고물가 땐 정권 심판론 통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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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선거와 물가 상관관계

‘물가 상황판’만 놓고 보면 올해 총선은 2012년 치른 19대 총선과 닮았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고물가 부담에 시달렸다. 직전 해인 2011년 물가 상승률이 4.0%를 기록했다. 선거 직전 1분기 물가 상승률도 3.0%였다. 정부의 물가 안정 목표(2%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야당은 “정부가 물가 관리에 실패했다”며 정권 심판론을 들고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물가가 올라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을 못 봤다”며 일명 ‘MB 물가 실명제’를 추진한 배경이다. 선거 결과는?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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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152석, 야당인 민주통합당이 127석을 확보해 여당에 승리가 돌아갔다. 차기 대선 주자인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여당 쇄신이 먹혀들었다. ‘고물가 심판론’이 선거 승패를 가른 결정적 변수는 아니었던 셈이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22대 총선에서 민생 최대 화두는 역시 물가다. 통계청이 2일 발표한 3월 물가상승률이 3.1%를 기록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이 물가 안정을 체감할 때까지 긴급 농·축산물 가격안정 자금을 무제한, 무기한 투입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물가=정권 심판’이 선거에서 통했느냐는 다른 얘기다. 중앙일보가 2000년 이후 치른 17대부터 21대 총선까지 최근 20년간 선거 결과와 해당 총선 직전(1분기) 물가상승률을 비교 분석한 결과 상관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가 높다고 야당을 찍고, 물가가 낮다고 여당을 찍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정치적 요인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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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만 놓고 봤을 때 “물가가 높다”는 기준은 3%를 넘겼을 때다. 분석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시절 치른 17대(2004년) 총선 당시 1분기 물가는 3.2%였다. 총선 결과는 여당(열린우리당) 압승이었다. 당시 야당(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추진한 역풍을 탔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18대(2008년) 총선 당시 1분기 물가는 3.8%였다. 결과는 여당(한나라당) 승리였다.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심판 성격이 컸다.

박근혜 정부 때 치른 20대(2016년) 총선 1분기 물가는 0.9%로 낮았다. 정부가 물가 관리를 잘했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결과는 야당 승리였다. 선거 직전 벌어진 공천 파동 영향이 컸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1대(2020년) 총선 1분기 물가는 1.0%였다. 여당이 승리해 분석 대상 총선 중에선 유일하게 물가와 선거 결과 간 상관관계가 있었던 해로 나타났다.

물가가 투표할 때 중요한 변수지만, 선거 결과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는 아니란 해석이 나온다. 김형준 배재대(정치학) 석좌교수는 “일반적으로 물가가 항상 높다고 느끼지, 특별히 낮다고 느끼기 어렵다”며 “물가가 높다고 해서 반드시 정권 심판 투표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는 특성상 정부 철학과 정책이 영향을 크게 미치는 부동산과 다르다”며 “‘물가를 관리한다’는 말 자체가 논란이 있을 수 있고, 금리와 외부 변수(전쟁 등)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부동산 대비) 경제 실정에 대해 매서운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선거 때마다 물가가 화제인 건 경제성장률·실업률 등 지표보다 훨씬 체감하기 쉬운 지표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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