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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600만원에 롤렉스·까르띠에?…페루, 또 대통령 탄핵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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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이 지난 2월 수도 리마에서 노인 지원 정책에 관한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이 지난 2월 수도 리마에서 노인 지원 정책에 관한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디나 볼루아르테(61) 페루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탄핵 위기에 몰렸다. 대통령 월급으로 사기 어려운 고가의 명품 시계와 팔찌를 착용했다는 이른바 ‘롤렉스 게이트’로 인해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1일(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마르고트 팔라시오스 자유페루당 의원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은 이날 의회에 볼루아르테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제출했다. 팔라시오스 의원은 SNS에 “명품 시계와 보석류 등 문제를 일으킨 볼루아르테에 대해 도덕적 무능을 사유로 탄핵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탄핵안 발의는 스캔들 관련 수사를 벌이는 검·경이 지난달 29일과 30일 각각 볼루아르테 대통령의 자택과 대통령궁 내 관저·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한 지 이틀 만에 이뤄졌다.

이번 사건은 지난달 14일 페루 온라인 매체 ‘라엔세로나’의 보도로 시작됐다. 매체는 “볼루아르테의 부통령 취임(2021년 7월) 이후 촬영된 공식 사진 1만여 장을 검토한 결과 취득 경위가 불분명한 고급 시계를 최소 14개 찼다”며 “이 중 하나는 1만4000달러(약 1900만 원)짜리 롤렉스”라고 전했다.

이후 “볼루아르테가 또 다른 롤렉스 시계 3개와 5만 달러(약 6700만 원) 상당의 까르띠에 팔찌도 착용했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도 이어졌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이 착용한 귀금속 가격의 총합은 50만달러(약 6억7735만원)에 달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 기간 그가 받은 월급은 사회개발부 장관을 겸임하던 부통령 시절 8136달러(약 1100만원), 대통령으로는 4200달러(약 568만원)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의 개인 계좌에 출처 불명의 30만 달러(약 4억500만원) 자금이 입금됐다는 의혹도 추가로 제기됐다.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의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의 모습. AFP=연합뉴스

검경은 지난달 18일 볼루아르테 대통령의 불법 재산 증식·자산공개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페루에서 선출 공직자는 2774달러(약 374만 원) 이상의 자산을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압수수색을 통해 롤렉스 정품 인증서를 비롯해 고가의 장신구들을 확보한 검찰은 5일 볼루아르테 대통령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검경 수사가 “자의적이고 불공평하며 모욕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면서 “롤렉스 시계는 18세 때부터 일했던 내 노력의 결실”이라며 “나는 깨끗한 손으로 취임했고 2026년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이라며 사임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야당이 발의한 탄핵안이 가결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페루에서 탄핵 절차는 국회 총의석수(130석)의 40%(52명)를 넘는 의원들의 동의를 받아야 개시될 수 있다. 의회에 올라온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전체 3분의 2 이상인 87명 의원의 찬성이 필요하다.

지난달 30일 페루 경찰이 디나 볼루아르테 대통령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압수물을 가져 나오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달 30일 페루 경찰이 디나 볼루아르테 대통령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압수물을 가져 나오고 있다. AFP=연합뉴스

탄핵안 가결 여부는 볼루아르테 대통령을 지지하는 범여권 5개 정당 의원(57명)의 태도에 달려 있다. 현재로선 볼루아르테 대통령에게 불리하다. 토르 토레스 내무부 장관과 난시 톨렌티노 여성부 장관, 미리암 폰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개인적인 사정 등을 이유로 차례로 사임 의사를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볼루아르테 대통령은 세 장관을 비롯해 이날 내각의 약 3분의 1인 총 6명의 장관을 교체하며 페루 정국에 더 불안함을 더했다”고 전했다. 볼루아르테 대통령 지지율도 취임 이후 지금까지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많은 전임 대통령들이 탄핵을 당했다는 점도 볼루아르테 대통령의 근심을 키우는 점이다. 이번에 야당이 탄핵 사유로 거론한 도덕적 무능은 페루에선 과거 여러 차례 대통령 탄핵의 명분이 됐다.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2016∼2018년) 대통령과 마르틴 비스카라(2018∼2020년) 대통령이 도덕적 무능으로 탄핵당했다. 볼루아르테 대통령도 전임인 페드로 카스티요(2021∼2022년) 대통령이 국회 해산을 시도하다 도덕적 무능 등을 이유로 탄핵을 당한 뒤 취임했다.

뉴욕타임스는 “페루에선 최근 6년간 대통령 6명을 배출했다”며 “이번 사건이 새로운 정치적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WP는 “페루에선 1985년 이후 정식 선출된 8명의 모든 대통령이 한 차례 이상 범죄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며 “볼루아르테 역시 전임 지도자들의 길을 따라갈 확률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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