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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잡는다" 우습게 본다…'재수생' 인텔의 도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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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단번에 파운드리 10→2위 도약? 인텔의 ‘믿는 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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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엔 뜻이 없던 재벌집 막내 아들, 갑자기 대학에 가겠다며 ‘전교 2등 도전’을 선언했습니다. 주인공은 글로벌 파운드리(위탁생산) 시장에서 2030년까지 ‘압도적 1위 TSMC의 다음’이 되겠다고 선포한 인텔입니다. 현재 1위는 TSMC(49.9%, 2023년 4분기), 2위는 삼성전자(11.3%)입니다. 현재 10위 수준인 인텔이 단숨에 2등을 제치겠다는 겁니다. 인텔은 다른 기업의 반도체를 찍어 주는 파운드리에 2016년 진출했지만 기술적 한계와 수주 부족으로 2년 만에 철수한 뒤 존재감이 떨어졌습니다다. 이제 와서 인텔이 다시 파운드리 도전을 선언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파운드리 ‘재수생’ 인텔의 전략은 두 가지다. 첫째는 기술로는 TSMC도, 삼성도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의 공정’ 1나노까지 진도를 확 뺀다는 것이고, 둘째는 미국 정부 지원을 발판삼아 빅테크 기업들을 고객으로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꿈은 야무지지만, 과연 현실에서 이게 가능할지가 관건이다.

인텔의 작전이 성공하면 동아시아에 집중된 반도체 제조의 판이 바뀌고, 실패하면 미국의 ‘칩스 포 아메리카’ 전략이 타격을 받는다. 어느 쪽으로든 파장이 크다. 초6에서 고2로 직행하는 격인 ‘1나노 월반’은 진짜 가능할까. 인텔에 점유율을 빼앗기는 건 TSMC일까, 삼성전자일까. 국내외 전문가들과 함께 인텔 vs 삼성의 파운드리 경쟁력을 따져봤다.

1. ‘반도체 부활’ 꿈꾸는 미국…돈·일감 밀어주는 ‘금쪽이’

김주원 기자

김주원 기자

반도체 회로의 선폭이 좁을수록 같은 면적의 웨이퍼에 더 많은 칩을 만들 수 있고, 칩의 성능도 더 좋아진다. 최근 이 미세 공정을 두고 삼성전자와 TSMC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1나노 이하’는 그야말로 꿈의 공정으로 불린다. 현재 기술 패러다임으로 가장 작게 만들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서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인텔은 1나노가 아닌 1x옹스트롬을 외쳤다. 1옹스트롬은 100억분의 1m로 1나노의 10분의 1, 즉 0.1나노급이다. 인텔은 2021년 나노보다 더 작은 단위 옹스트롬을 들고 나와 초미세 공정 경쟁에 불을 붙였다.

인텔은 2021년 10나노급의 공정 양산을 시작으로, 내년엔 18A(1.8나노급)를 세계 최초로 양산하겠다고 주장한다. TSMC와 삼성전자처럼 2027년까지 14A도 양산하겠다는 계획도 지난달 밝혔다. 이게 가능할까. 파운드리 1, 2등의 속도를 보자. 삼성과 TSMC는 각각 2016년, 2017년에 10나노를 시작했다. 10나노→1.4나노까지 삼성이 11년, TSMC가 10년을 잡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인텔은 이걸 6년만에 하겠다는 얘기다.

“기술 리더십을 이끌기 위해 연방정부, 민간, 학계가 이렇게까지 협업한 적은 없다. 굳이 찾자면 60년 전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을 꼽을 수 있겠죠.”

지나 러몬드 미국 상무부 장관은 지난 2월 2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인텔 파운드리 행사(인텔 다이렉트 커넥티드)에 화상으로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최근 반도체 전쟁을 20세기 우주 경쟁에 비유한 것이다. 그는 인텔을 “미국의 챔피언”이라고 치켜세우며 “반도체 산업을 다시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금쪽이’ 인텔에 보조금도 듬뿍 퍼줬다. 백악관은 지난 20일 인텔에 직접 보조금(85억 달러)과 대출을 합쳐 총 195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준다고 발표했다. 미 정부가 칩스법에 따라 5년간 지원할 총 보조금(527억 달러)의 37%를 인텔이 챙겼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60억 달러), TSMC(50억 달러)가 받을 금액의 3~4배다.

PC 시장을 장악했던 ‘윈텔(윈도+인텔)’도 AI 반도체를 중심으로 다시 뭉친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인텔 파운드리의 18A 공정으로 자사 AI 반도체를 만들겠다며 인텔에 힘을 실어줬다. 인텔은 “선금을 입금한 ‘의미있는 18A 고객사’ 4곳을 확보했다”고도 밝혔는데 이 역시 모두 미국 기업들이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끼리끼리’가 계속된다면 삼성의 고객 풀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20세기 후반 전자산업의 발전을 이끈 ‘무어의 법칙’ 주인공은 인텔의 공동창업자 고든 무어다. 무어는 인텔 창업(1968년) 3년 전에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18개월(1975년 24개월로 수정)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반도체 기술 발전의 핵심을 꿴 창업자, 이후 50여 년간 축적한 설계 자산과 지식재산권(IP)은 인텔의 강력한 무기다. 명실상부한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 최강자라는 점도 장점이다.

2. 설계 노하우 많은 ‘칩 강자’…낮은 수율, 원가경쟁력 약점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스튜어드 판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담당 부사장은 “우리는 시스템 반도체에서 파운드리로 변해가는 기업”이라며 “회사 내부에 시스템반도체 자산이 풍부하고 이를 통해 고객들이 필요한 것을 빠르고 전문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어떨까.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성능 메모리가 발전하기 전까지 메모리 반도체는 다른 시스템 반도체에 비해 단순한 기술로 평가받았다. 오랜 기간 메모리 제조 중심으로 운영된 삼성전자의 경우 설계 경쟁력이 부족할 수 있다.

인텔은 ‘AI 시대를 위한 세계 최초 시스템스 파운드리’가 되겠다고도 선언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니 인텔 측은 ‘설계부터 제조·패키징·테스트 등 생산 과정을 쪼개 고객이 원하는 부분만 골라서 쓸 수 있게 서비스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TSMC에서 만든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인텔이 만든 CPU와 함께 하나의 칩으로 패키징하는 솔루션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인텔이 앞선 패키징 기술을 수주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전략이다.

3. 삼성, 인텔과 ‘고객 풀’ 겹쳐…초격차 기술력 확보가 관건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인텔도 약점이 있다. 낮은 수율 문제로 인텔이 파운드리에서 퇴각했단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이 단점을 인텔이 그새 다 극복했다고 보긴 어렵다. 양산 경험도 부족하고 단골도 없는 인텔로선 원가경쟁력도 중요하다. 인텔은 18A를 비롯한 첨단 공정을 하이NA-EUV(극자외선) 장비가 들어선 오리건주 공장에서 시작할 계획이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자가 “오리건 공장의 칩 제조 비용은 대만보다 50% 높다”고 했듯, 같은 칩도 미제가 더 비싸다.

무엇보다 지금 삼성에 가장 중요한 건 초격차 기술력이다. 경쟁사보다 앞서 도입한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이 승부수가 될 수 있다. GAA 기술은 공정 미세화에 따른 트랜지스터 성능 저하를 극복하고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전력 효율을 높이는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고 있다. TSMC는 2나노에서, 인텔은 18A부터 GAA 공정을 도입한다. 김형준(서울대 명예교수) 차세대 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삼성이 3나노에서 TSMC보다 수율이 떨어진 건 어렵고 복잡한 GAA를 먼저 시작했기 때문”이라며 “역으로 향후 2나노 이하 공정에선 삼성이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경쟁사를 앞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삼성이 확실한 기술력을 갖춘다면 삼성의 턴키 방식이 고객들에겐 가장 편한 서비스”라며 “파운드리 중 유일하게 자체 브랜드의 HBM을 보유한 삼성이 패키징 기술력을 함께 높여 고객들에게 어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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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시장과 정부의 한계에 도전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기업’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더중플이 더 깊게 캐보겠습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7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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