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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는 '역대급 실적' 성과급 잔치…소비자는 해약 몸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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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호 15면

보험업계 빛과 그늘

45.8%. 18일 금융감독원이 밝힌 저해지환급형(환급금이 30~50% 수준) 종신보험의 5년 누적 해지율(2018~2022년)이다. 가입자 10명 중 5명 정도가 5년이 안 돼 중도 해약했다는 얘기다. 이는 비단 종신보험만의 문제도 아니다. 생명·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 해약 건수는 1292만2000건으로 역대 최고치다. 금리가 오르면서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보험을 해지하는 경우도 있지만, 업계에서는 불완전판매와 보험사 간 과당경쟁 탓이 크다고 본다. 지난해 주요 보험사가 역대 최고 실적을 거두며 성과급 잔치에 나선 가운데, 보험 소비자는 적지 않은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주요 보험사들은 역대급 실적을 거둬들였다. 손해보험(이하 손보)업계 1위인 삼성화재는 세전이익 2조4446억원을 달성하며 창사 이래 처음으로 2조원을 돌파했다. 생명보험(이하 생보)업계 1위인 삼성생명 역시 연결 기준 당기순익이 1조8953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19.7% 증가했다. 메리츠화재도 1조5000억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다. 이런 가운데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기본 연봉의 60%, 삼성화재는 연봉의 최대 5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삼성생명과 DB손보는 각각 연봉의 29%, 33%를 KB손보는 18.5%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실적에 대한 보상은 당연한 결과지만 이를 바라보는 업계 안팎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지난해 보험사들이 과당경쟁을 벌이며 갈아태우기(승환 계약)로 단기 실적을 끌어올렸는데, 이로 인한 부작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종신보험 가입자 C씨는 설계사로부터 “보장이 더 좋은 상품이 출시됐다”는 말에 새로운 계약으로 갈아탔다. 하지만 사망보험금은 전과 동일(1억원)함에도 보험료는 매월 1만원이 늘어났고, 기존 계약의 질병수술 보장 등이 계약을 갈아타면서 제외돼 버렸다.

보험시장의 혼탁한 상황은 보험계약의 낮은 유지율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한국보험대리점협회가 발표한 ‘2023년 경영공시’에 따르면 생명·손해보험의 25회차 유지율은 각각 70.91%, 73.02%다. 생명보험의 25회차 유지율은 2022년 68.83%에서 2.08%포인트 개선됐지만, 손해보험은 같은 기간 0.93%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보험 유지기간을 5년(61회차) 이상으로 늘려보면, 유지율은 더욱 크게 떨어진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생명보험 61회차 유지율은 40%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손해보험 유지율은 42.7%다.

보험 계약자 절반 이상이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보험을 해지하는 것이다. 김동겸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보험의 유지율은 미국·일본·싱가포르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20%포인트 안팎 떨어지는 수준”이라며 “타 국가에 비해 설계사 정착률 수준이 낮은 현실을 비추어볼 때 고객관리 측면에서 판매자의 잦은 이직 등이 고객 이탈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법인보험대리점(GA)의 설계사 정착률은 53.6% 수준에 그친다. 1년 이상 정상적인 보험모집 활동을 유지한 설계사가 절반 수준에 그쳤다. 업계의 설계사 뺏기와 이로 인한 불건전 영업 행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포화상태인 국내 보험시장에서 단기간 실적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쉽고도 효과적인 방법이 설계사 조직 확대이기 때문이다. 이는 보험 갈아태우기와 종신보험 등 높은 판매수수료가 책정된 특정상품 쏠림을 부추기고 있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설계사들은 이직 후 이적료만큼 단기간 실적을 올려야한다는 부담이 있고, 판매수수료는 계약 체결 시점에 선지급되는 게 일반적”이라며 “이 때문에 수수료 환수기간(보통 15~24개월)이 지난 보험계약을 해지한 뒤 새로운 상품으로 가입시키는 불건전 영업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 최근 삼성생명에서 GA인 스카이블루에셋으로 이직한 일부 설계사들이 퇴사 전후 1개월 새 계약 138건을 무더기 해지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보험시장이 혼탁해지자 금융당국도 대응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20일 보험사에 “보험인수 현황을 매일 보고하라”는 전례 없는 조치를 내렸다. ‘과도한 보장→과열경쟁→금감원 자제령→절판 마케팅’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다음 달부터는 ‘건전경쟁 질서 확립 태스크포스(TF)’도 가동한다. 차수환 금감원 부원장보는 “공정한 보험금 지급 관행 정착 유도 등 소비자 편에 서서 흔들림 없이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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