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초등학교 수학 문제와 미드로 부활한 문혁의 추억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차이나랩’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넷플릭스 8부작 '삼체' 예고편. 넷플릭스

넷플릭스 8부작 '삼체' 예고편. 넷플릭스

현재 중국 70~80대 연배의 상당수는 공통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고 자랐다. 이런 이유로 중국이 개혁개방을 부르짖으며 본격적으로 산업화하던 시기에 자리 잡지 못하고 중하층민으로 인생을 보냈다. 그래서 자본주의화 된 중국 사회에 불만이 많다. 이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부’ 마오쩌둥에 열광하고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을 욕한다. 이들 세대를 하나로 묶어 부르는 명칭이 있다. ‘홍위병’이다.

최근 중국의 한 초등학교 수학 시험문제가 찍힌 사진이 SNS에 올라와 논란이 되고 있다. 문제의 요지는 85, 82, 86, 82, 83, 92라는 6개 숫자를 제시한 후 여러 가지 평균값에 관해 묻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제시한 텍스트가 뜬금없다. ‘제20차 당대회 정신’, ‘(중국의) 문화적 자신감’ 같은, 수학과 전혀 상관없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어록이나 중국 공산당의 정책을 인용하고 있다.

그래프가 보기로 주어진 한 문제는 ‘사이버 공간의 운명공동체’에 관한 시진핑의 장황한 연설로 시작한다. 운명공동체는 시진핑의 새로운 국제 질서 구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세계 각국은 중국과 한 운명이고 따라서 중국과 연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수학 문제 이미지. Unsplash(@antoine1003)

수학 문제 이미지. Unsplash(@antoine1003)

이런 일들은 중국이 거쳐온 한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 1966년에 발발해 10년간 중국을 환란에 빠트린 ‘프롤레타리아 계급 문화대혁명,’ 소위 문화대혁명(문혁)이다. 수천만을 굶어 죽게 만든 대약진운동으로 지도력에 상처를 입고 일선에서 물러난 마오쩌둥이 류사오치, 덩샤오핑 등으로부터 권력을 탈환하기 위해 10~20대 홍위병들을 선동해 일으킨 무력 사변이었다. 당시 홍위병들은 마오쩌둥 어록을 성경처럼 들고 흔들며 마오의 교시를 하느님의 복음으로 여겼다. 당시의 선전 선동 교육이 21세기 시진핑의 중국에서 되살아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시절 교과서의 각 단원 머리말이나 시험문제는 대부분 마오쩌둥 어록의 문구에서 시작됐다.

공교육 분야에서 시진핑 사상을 주입하는 정책은 공식적으로 2021년에 시작됐다. 그해 9월 초등학교부터 대학, 대학원까지 모든 교육과정의 교과서에 ‘시진핑의 정치사상’을 포함하도록 했다. 상하이 교육 당국은 초등학교의 영어 기말고사 실시를 제한하면서도 시 주석의 사상은 필수적으로 학습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중국 정부가 학업 및 사교육비 부담을 줄여 출산율을 끌어올리겠다며 사교육 시장 규제에 나서면서도 사상적 통제는 더욱 강화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과정에서 교육청 단위로 학업성취도 평가를 치를 수 없고, 초중고에서 어떠한 연합고사나 월례고사도 치르지 못하도록 했지만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 학생 교재'는 필수로 배우도록 했다. ‘도덕과 법치(정치)’ 수업 시간 등을 이용해 매주 1시간 정도 가르치도록 한 것이다. 또 중앙정부나 상하이시의 심의를 통과하지 않은 교재는 구매할 수 없다고 지시했다.

한국 못지않게 중국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볼멘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지금 대입 정책 아래에선 더 많은 내용을 더 일찍 배워야 하는데 일선 학교엔 정반대 지시를 내리면 결국 사교육으로 해결하라는 얘기 아니냐” “시험이 없어지면 해당 과목 수업 시간도 줄어들 테니 집에서 영어 같은 과목을 더 많이 신경써야 한다” 등등 문화대혁명 시절엔 없었을 법한 반응들이었다.

최근엔 또 다른 이슈로 문혁이 주목받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삼체(3 Body Problem)〉가 인기몰이를 하면서다. 중국인 작가 류츠신이 쓴 소설이 원작이다. “1960년대 중국의 한 젊은 여성이 내린 운명적 결정이 시공을 뛰어넘어 현재의 유수 과학자들에게 불가사의한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절친인 다섯 명의 과학자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위협에 맞닥뜨리는 넷플릭스 SF 시리즈”라고 포털사이트에 소개돼 있다. 미국 대통령 재임 중 원작 소설을 읽은 버락 오바마는 "작품 스케일이 워낙 커서 미 의회와 갈등이 사소하게 느껴질 정도"라며 극찬했다. 류츠신은 이 작품으로 공상과학(SF) 장르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과 로커스상을 아시아 최초로 받았다.

넷플릭스는 중국에서 서비스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 중국인들은 가상사설망(VPN)이라는 ‘어둠의 경로’로 다 보고 있다. 관영 환구시보와 자매 영자지 글로벌타임스가 관련 기사를 낼 정도로 관심이 대단하다. 드라마를 본 중국인들은 자국 문화 콘텐츠가 세계인에게 어필했다며 고무된 반응이 많다. 반면 드라마가 중국을 비하하고 원작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넷플릭스 8부작 '삼체' 예고편. 넷플릭스

넷플릭스 8부작 '삼체' 예고편. 넷플릭스

무엇보다 드라마 도입부가 중국인 시청자들에게 적잖이 충격을 준 모양이다. 문혁 시절 저명한 과학자가 자신의 딸과 군중이 보는 앞에서 홍위병들에게 폭행당해 숨지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한 중국인은 중국 SNS인 웨이보(微博)에 "첫 장면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며 "예상은 했지만, 화들짝 놀랐다"고 감상평을 적었다. 류츠신은 2019년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당초 소설도 이 장면으로 시작하려 했지만, 출판사가 검열을 우려해 내레이션 속에 묻었다”고 전했다.

문혁은 중국인들에게 현재진행형이다. 올드보이들은 그 추억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그 시절 산시(陝西)성 토굴로 하방(下方)됐고 아버지도 반당분자로 낙인 찍혀 귀양살이를 했으며 이복 누나는 홍위병에게 두들겨 맞다가 자살했다. 당시였다면 홍위병이 됐을 법한 현재의 젊은이들은 당시의 홍위병처럼 〈장진호〉 같은 반미 애국주의 영화에 열광한다. 그러다 자국 소설가가 쓴 원작을 미국인이 각색해 만든 드라마를 보고 문화대혁명의 참상을 접하고 있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