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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글로벌 아이

재외 교민들의 투표지에 담긴 소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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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도성 베이징 특파원

이도성 베이징 특파원

“우리나라가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왔습니다.”

중국에 26년째 살고 있는 교민 박정수씨의 말이다. 네이멍구자치구 바오터우에 거주하는 그는 새벽부터 집을 나서 재외국민 투표소가 마련된 베이징 주중한국대사관을 찾았다. 바오터우는 베이징에서 600㎞ 넘게 떨어진 곳에 있다. 기차로 왕복 7시간, 투표 한 번에 꼬박 하루를 다 써야 하지만, 박씨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예전 같지 않아 좋은 방향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며 먼 길을 마다치 않고 달려왔다.

지난 27일 베이징 주중국 한국대사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이도성 기자

지난 27일 베이징 주중국 한국대사관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이도성 기자

다음 달 10일 열리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앞서 재외국민 투표가 시작됐다. 지난 27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엿새 동안 전 세계 115개 나라 220개 투표소에서 진행된다. 이번 재외선거 투표에 등록된 사람은 14만8000명 정도다.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보다 14% 가까이 줄었다. 특히 중국에는 재외선거권자가 17만여 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투표를 위해 신고한 사람은 10% 정도에 그쳤다. 교민의 투표 편의를 위해 주중 대사관 측이 마련한 버스는 베이징과 톈진 곳곳을 돌고 투표소에 도착했지만 45개 좌석은 상당수 비어 있었다.

투표소를 찾는 발걸음이 줄어든 건 중국의 ‘제로 코로나’ 3년을 거치면서 전체적인 교민 수가 크게 줄어든 영향이 크다. 하지만, 계속 악화하는 한·중 관계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에서 원인을 찾는 목소리도 있다. 베이징에서 근무 중인 한 주재원은 “낮은 투표율 자체가 의사 표시”라면서 “투표를 하지 않음으로 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은 희망을 그리고 있다. 중국에 유학 중인 대학생 오혜연 씨는 “지난 대선에 이어 두 번째 재외국민 투표”라면서 “투표를 하면서 우리나라와 내 지역에 대한 책임감이 더 올라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버스로 3시간 30분 만에 투표소에 도착한 중국 교민 박인헌 씨도 “국민 한 사람으로 투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톈진에 20년 넘게 산 김 모 씨는 “중국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시선이 사드(THAAD) 사태 때보다 더 안 좋아졌다고 느낀다”며 “앞으로 나아졌으면 한다”며 투표했다.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른바 ‘셰셰’ 발언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공방이 오간다. 대중 외교의 큰 틀을 논하면서도 ‘국민의 삶’은 빠져 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투표용지에 담아 전하는 마음은 과연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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