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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절함’의 부적절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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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영희 도쿄특파원

이영희 도쿄특파원

최근 일본 TBS에서 방송 중인 드라마 ‘부적절한 것도 정도가 있어!(不適切にもほどがある!)’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한국 넷플릭스에서도 방영 중) 일본에서 이런 드라마가 나오다니, 라는 놀라움과 어쩌면 일본이라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라는 수긍이 오간다. 줄거리는 이렇다. 1986년, 도쿄의 한 중학교 체육선생님인 오가와가 어느 날 퇴근길 버스에서 잠깐 잠이 든다. 눈을 뜨니 38년 후인 2024년의 도쿄에 도착해 있다. 뭐지? 우동 가락 같은 것을 귀에 늘어뜨리고(아이팟), 네모난 철판(스마트폰)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버스에 가득하다.

일본 TBS에서 방송 중인 드라마 ‘부적절한 것도 정도가 있어!’ 포스터. [사진 TBS]

일본 TBS에서 방송 중인 드라마 ‘부적절한 것도 정도가 있어!’ 포스터. [사진 TBS]

흔한 타임슬립물이지만, 드라마의 시도는 야심차다. 버스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고, 학교에선 야구배트로 학생들을 체벌하며, 여성들에게 ‘못생긴 게’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퍼붓던 시대의 중년 남성은 요즘 세상에 여러 모로 ‘부적절한’ 존재다. 정치적 올바름(PC)이 지배하는 레이와(令和·2019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일본의 연호) 시대에 뚝 떨어진 주인공이 처음엔 쇼와(昭和·1926~1989년) 시대의 미덕을 항변하다 점차 나름의 해법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작가는 믿고 보는 코미디의 대가 구도 간쿠로다. 하지만 코미디로 그리기엔 지나치게 고차원의 문제였달까. 하하 웃다가도 자꾸 거슬리는 부분이 눈에 띈다. 38년 전 중년 남성의 시선이 중심이다보니 직장에서의 파워하라(권력형 괴롭힘), 세크하라(성적 괴롭힘) 등의 사례가 죄다 ‘요즘 애들의 유난스러움’ 정도로 그려진다. “자 싸우지 말고 대화합시다”라는 아저씨의 중재에 모든 갈등이 해소된다는 설정 또한 너무 단순하다. 일본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평론가 스즈키 미노리는 아사히신문에 드라마가 여성 인권이나 성적 소수자를 묘사하는 방식 등을 지적하면서 “페미니즘이나 (현대의) 인권 감각을 야유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젠더 격차 보고서’에서 일본의 성 평등 순위는 조사 대상 146개국 중 125위였다. 선진국이라기엔 턱없이 낮은 성 평등 지수가 보여주듯 ‘다른 목소리’를 경계하고 배제하는 분위기가 사회 곳곳에서 느껴지기도 한다. 드라마가 그려내는 일본 사회에 대해서도 더 활발한 논쟁이 있기를 바랐건만, 비판 의견엔 “불만 있으면 보지 마”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유사한 주제의 드라마가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면 계속 방송을 이어가는 게 가능했을지, 복잡한 마음으로 드라마의 완결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