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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의사단체 계속 대화 외면하면 파국적 결과 부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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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 대통령 논의 요청…한동훈 “의제 제한 없어”

강성 회장 선출한 의협도 환자 위해 협상 나서야

대정부 강경투쟁 인사가 의사들의 법정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를 이끌게 됐다. 어제 42대 의협 회장으로 선출된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이번에 출마한 후보 중 가장 강성으로 분류된다. 의대 정원 증원 규모에 대해 오히려 “500~1000명 줄여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을 해 왔다. 의대 증원을 두고 벌어진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악화하리란 우려가 나온다.

이번 사태가 정부의 전격적인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발표로 촉발됐지만, 비타협적 태도로 일관해 온 의사들의 책임도 크다. 국민 대다수가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의사 단체들은 정부에 반대만 할 뿐 적절한 증원 규모를 제시하지 않았다. 기껏 내놓은 의견이 “0명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정도다. 전공의 이탈에 이어 전국 의대 교수들까지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빅5’를 비롯한 대형병원 진료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지난 24일 의료계와 만나면서 물꼬를 텄고, 윤석열 대통령이 전공의 면허정지 유보 등 유연한 입장을 밝혀 타협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한 위원장은 어제 증원 규모까지 의제에 올릴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강경파 의협 지도부 구성으로 모처럼 지펴진 대화의 불씨가 꺼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도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 가운데 26일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이 응급환자를 급히 이송하고 있다.김성태/2024.03.26.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도 집단 사직서를 제출한 가운데 26일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이 응급환자를 급히 이송하고 있다.김성태/2024.03.26.

정부는 증원 규모 2000명은 건드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어제도 “의대 증원은 의료 개혁의 출발점”이라고 재확인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 역시 대학별 정원 배정 후속 조치를 5월 안에 마무리하겠다고 못 박았다.

정부는 ‘2000명 증원’에서 한 치도 양보하지 못한다는 입장이고, 의료계는 ‘2000명 증원 철회’를 대화의 조건으로 내세우니 절충의 여지가 없다. 사회 각계의 원로가 나서야만 해결이 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어제 한덕수 총리가 김영태 서울대병원장, 윤을식 대한사립대학병원협회장 등 의대 지도부와 유홍림 서울대 총장, 윤동섭 연세대 총장, 김동원 고려대 총장 등 교육계 인사를 만나 대화체 구성을 제안한 변화는 바람직하다. 의료계와 정부 어느 한쪽도 물러서지 않는 극한 대립을 이같이 대학 총장 등 사회 지도층이 나서 풀어줘야만 환자들의 고통이 끝날 수 있다.

의료 위기 해결은 의사들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의사 단체들은 2000명 증원이 무리라는 주장을 대화 테이블에 앉아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며 설명해야 한다. 합당한 논리와 대안을 제시한다면 사회 각계 인사들이 나서 타협안을 도와줄 가능성도 열려 있다. 그러나 어떤 대안도 내놓지 않고 기존 입장만 반복하며 대화마저 거부하는 강 대 강 대결로 환자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면 의사들은 전부를 잃게 된다는 사실을 성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