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약 냉소만 부추기는 여야의 ‘천지개벽’ 포퓰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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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가 24일 서울 송파구 잠실 새마을전통시장에서 국민 1인당 25만원씩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가 24일 서울 송파구 잠실 새마을전통시장에서 국민 1인당 25만원씩의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마구 쏟아지는 부실 공약

지난 총선 공약의 이행 실적부터 검증받아야

총선이 보름 뒤로 다가왔지만 유권자들은 각 당의 공약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는 현 선거 구도가 정치적 진영논리에 강하게 얽매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각 당의 공약이 워낙 현실성과 타당성이 없는 부분이 많아 유권자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마구 던지는 공약들이 ‘공약 냉소주의’를 부추기는 게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 현실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내놓은 전 국민 1인당 25만원씩 민생회복지원금 지급 공약이 그런 사례다. 13조원의 돈이 들어가는데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마련하면 된다고 한다. 이런 주장은 이 대표가 돈만 뿌리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소득주도성장의 환상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상식적인 국민은 정부가 빚을 내 돈을 뿌리면 물가가 급등하고 재정이 불안해질 것이란 걱정부터 한다. 13조원의 돈을 쓰더라도 1/n로 살포하는 것보다는 사회간접자본(SOC)이나 연구개발처럼 생산적인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게 효율적이란 사실은 삼척동자도 안다. 이런 수준의 공약을 내놓으니 유권자들이 공약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사실 포퓰리즘으로 따지자면 윤석열 대통령도 크게 할 말이 없다. 윤 대통령은 선거철에 23번이나 전국 순회 민생토론회를 주최하면서 번번이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정책들을 쏟아냈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노선 연장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추진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등 굵직한 것만 해도 다 정리하기 힘들 정도다. 다 합치면 ‘천지개벽’ ‘상전벽해’ 수준이다. 그러면서도 재원 대책은 특별히 제시한 게 없다. 정책을 너무 많이 쏟아내 되레 기억에 남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여야의 공약 베끼기도 냉소를 초래하는 요인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철도 지하화, 간병비 급여화 등을 놓고 베끼기 논란이 벌어졌다. 공약이 엇비슷해지면 노선 차별화가 안 되고 진실성을 의심받기 십상이다. 일선 지역구에선 중앙당의 정책 노선과 정반대 공약을 내거는 사례도 적잖다.

최근 국민의힘은 10대 총선 공약을 발표하면서 각각의 재원 조달 방안을 첨부했는데, 재원 대책이 너무 간단하고 추상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도 300여 쪽의 공약집을 만들었는데 아예 재원 대책 자체가 누락돼 있다. 재원 대책이 불확실하거나 아예 없는 공약은 일종의 대국민 사기나 마찬가지다.

근본적으론 각 당이 지난 선거에서 제시했던 공약을 얼마나 이행했는지 면밀히 검증하고, 그 성적을 이번 선거의 투표 기준으로 활용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그래야 ‘아니면 말고 식’ 공약이나  ‘공약 냉소주의’를 불식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