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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아무나 정치해선 안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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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대리

비사회주의 좌파 운동가 중에 사울 알린스키란 인물이 있다. 생전에 “너희가 정말 행동하는 사람으로 살려면 자기 침대에서 죽을 생각은 말라”고 했다는데, 그의 마지막이 그랬다. 길을 걷다 쓰러져 숨졌다. 그가 쓴 책 중에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이 있다. 가진 자들을 위해 권력을 유지하는 법을 담은 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라면,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을 위해 권력을 빼앗는 방법을 담은 게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이라고 그는 자부했다.

 급진주의자이니 교조적일 것이라고 짐작하겠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많은 이에게 미움 또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그는 이렇게 단언했다. “독단적 교리를 혐오하고 또 두려워한다.” 그는 그러면서 “인간의 정신은 과연 우리가 옳은지를 살펴보는 내적 의심이라는 작은 불빛을 통해서만 빛날 수 있다”며 “자신이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완전히 확신하고 있는 자들은 내적으로 어둠에 가득 차 있고, 외적으로는 잔혹감과 고통·불의로 세상을 어둡게 한다”고 주장했다.

일방 독주나 악마화는 정치 아냐
정치과잉 같으나 실제론 정치부재
대화·타협의 진정한 정치 가능할까

 그에게 타협은 ‘아름다운 단어’였다. 100%를 요구했다가 30%에서 타협해도 30%는 얻은 것이라고 봤다. 그게 새로운 출발점이 될 터였다. 그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는 끊이지 않는 갈등 그 자체며, 갈등은 간헐적 타협에 의해 멈추게 된다. 그 타협은 갈등과 타협 그리고 끝없이 계속되는 갈등과 타협의 연속을 위한 출발점”이라고 인식했다.

 의사소통은 절대 중시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에 비춰서만 사물을 이해한다. 이는 당신이 그들의 경험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더욱이 소통은 양방향이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당신의 생각을 그들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면 당신은 사물의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길게 인용했다. ‘조직가’를 ‘정치가’로 바꿔도 맞는 말이어서다. 설마 하겠지만, 진짜 그렇다. 실례도 있다.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은 알린스키의 사상적 세례를 받은 이들이다. ‘내적 의심’, 타협과 의사소통은 정치가에게도 필수적 자질이다. 인간 간 적대와 싸움 본능을 평화적으로 처리하는 게 정치여서다. 정치란 본질적으로 “차이를 없애는 게 아니라 차이를 공존할 수 없는 적대가 아닌 생각의 차이나 이견으로 이해하고 그 속에서 좀 더 나은 공적 결정에 도달하기 위해 경쟁하고 타협하고 싸우고 조정하는 ‘종합예술’ 같은 것”(박상훈)이다. 공적 결정에 사(私)가 배제될 순 없겠으나 사로 뒤범벅될 순 없다.

(대전=뉴스1) 김기태 기자 = 대전 중구청 직원들이 26일 대전 중구 서대전초등학교에서 진행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및 중구청장 재선거 대비 사전투표 모의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정당 38곳으로 비례대표 투표용지가 51.7cm로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2024.3.26 /뉴스1

(대전=뉴스1) 김기태 기자 = 대전 중구청 직원들이 26일 대전 중구 서대전초등학교에서 진행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및 중구청장 재선거 대비 사전투표 모의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는 정당 38곳으로 비례대표 투표용지가 51.7cm로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2024.3.26 /뉴스1

 누군가의 표현대로, 요즘 ‘누구나 정치할 수 있지만 아무나 정치해선 안 된다’(박성민)는 걸 절감하고 있다. 정치도 1만 시간이 필요한 고도의 전문직이란 점도 새삼 느낀다. 요새 정치 좀 한다는 이들은 갈등을 증폭하고, 차이·이견을 공존할 수 없는 적대로 키운다. ‘정치’란 외피를 두른 채 말하고 행동하니, 많은 이가 이런 행태를 개탄하며 ‘정치 혐오’로 인식한다. 매번 정치 안 해 본 사람을 새로 소환하지만, 그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일방 독주가 정치인가? 아니다.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게 정치인가? 아니다. 사적 복수를 위해 공적 자원을 소모하는 게 정치인가? 아니다. 우리가 혐오하는 건 정치 자체가 아닌 정치의 부재다.

 대체로 원칙이라고 동의하기 어려운 것도 원칙이라고 고집하는 대통령과, 탄핵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치른 지 불과 몇 년인데 또 대통령 임기를 중단시키겠다는 세력이 맞서고, 의원 배지란 사익을 위해선 존엄성마저 내려놓고 돌진하는 혼미한 정신들로 넘쳐나는 총선 목전이라 더욱 진짜 정치를 그리워하게 된다. 대화하고 타협하며 공통의 공익을 찾아가는 것, 답답해 보일지언정 그게 정치다. 어떤 어려움에도 그걸 해내겠다는 사람이 정치가다. 그런 정치와 정치가가 있는가. 우리에게 그걸 가려낼 의지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