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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현기의 시시각각

신의 직장, 국회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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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논설위원

김현기 논설위원

#1 최강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3일 “정봉주 전 의원이 국회의원 시절을 그리워하는 대표적 이유는 공항 의전 때문”이라고 말했다. ‘발목지뢰 밟으면 목발 경품’ 발언이 부상하며 정봉주 전 의원의 공천은 곧 취소됐지만, 난 ‘아, 이거다’ 싶었다. 38억원 부동산, 37.6억원 빚의 갭투기 변호사(부동산업자에 가깝다), 정치를 잘 못 배운 음란 예찬 청년 정치인, 횡령·음주운전 등 전과 11범 범죄자 등 너나 할 것 없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금배지에 달려드는 이유를 말이다. 최 전 의원 말대로 한번 특권의 맛을 보면 헐떡거리고 (국회의원) 하려 한다. “예를 들어 봉도사(정봉주)가 제주도에 식구들과 여행을 가면 공식 출장이 아닌데도 신분증 내고 티케팅할 때가 되면 공항이 시끌해지면서 (의전이) 막 나온다. (중략) ‘아, 국회의원이 이런 게 있었구나’라고 처음 느끼신 거다.” 어디 이뿐인가. 비행기 비즈니스석, KTX 특실 좌석, 귀빈실과 귀빈 주차장 모두 무료다. 보좌진 9명에 의원사무실 지원 경비로도 1억원이 나온다. 후원금으로 매년 1억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을 챙길 수 있다. 그러니 공식 연봉은 1억5700만원이지만 이런저런 혜택을 다 합하면 실질 연봉은 5억원이 훌쩍 넘는다. 의원회관 내 이발소·헬스장·목욕탕·약국 공짜, 회관 내 내과·치과·한의원은 가족까지 공짜다. 이런 특권 조항이 무려 186개다. 아마 국회가 세종시로 내려가면 특권은 더 늘어날 것이다. 신의 직장이다.

특권 186개, 그러니 금배지 오픈런
폐지 안 하면 ‘제2의 정봉주’ 나온다
폐지 공약 내건 정당에 표를 던지자

#2 미국 워싱턴DC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국내선 항공편에 우연히 랜드 폴 상원의원(켄터키주)과 동승했을 때 본 광경이다. 50개 주에 2명씩 총 100명인 상원의원은 거의 대통령급이다. 그런데 탑승부터 짐 찾기까지 의전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야구모자 쓰고 배낭 하나 멘 채 다른 승객과 똑같이 줄을 서 수속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워싱턴 근무 시절 만난 하원의원 대부분도 늘 약속장소에는 우버를 타고 나타났다. 기사 딸린 검은 고급 승용차 같은 건 없었다. 일본은 미국보다는 조금 특권이 있는 편이긴 하다. 하지만 지방 선거구 의원이 국회 출석을 위해 도쿄와 지역구를 오갈 때에 한해 열차 일등석 무료 탑승권, 월 3회 무료 항공권을 주는 정도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두 배가량인 스웨덴의 국회의원 연봉은 1억원에 ‘불과’하다. 일을 많이 하고, 일을 잘하면 뭐라 시비를 걸지 못한다. 그런데 한국은 OECD 35개 국가 중 국민소득 대비 세비는 3위인데, 의회의 효과성 평가는 꼴찌에서 2위다. 이런 국회의원들에게 국민 혈세로 돈과 특권을 퍼주는 건 낭비이자 모순이다.

#3 총선까지 앞으로 13일 남았다. “세 자녀 대학등록금을 면제하겠다” “금융소득세를 폐지하겠다” 등 선심성 공약이 난무한다. 여야 가릴 게 없다. 선거 막판으로 가면 더할 것이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제 아무도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진짜 면제, 폐지해야 할 건 그런 것 말고 당사자인 국회의원들의 특권이다. 이미 수준 미달의 후보 공천 시스템, 국가관도 뚜렷하지 않은 비례대표가 위성정당이란 희한한 자동출입문을 타고 국회에 입성하는 현실을 국민들은 목도했다. 이들에게 왜 세계 최고급 특권을 줘야 하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개혁신당, 조국혁신당은 이 문제에 아무런 답이 없다. 그나마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이달 초 ▶헌법상 불체포 특권 폐기 ▶의원 정수 250명으로 50명 감축 등 7개 사안을 공약으로 발표했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186개 의전과 특권 모두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제2의 정봉주’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야 국회의원이란 특권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는 머슴이란 인식을 뿌리내릴 수 있다. 그것만 돼도 성공이다. 어느 정당이건 먼저 그걸 약속하는 정당에 표를 던지자. 지금 아니면 바꾸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