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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만에 돌아온 ‘백제의 미소’, 딱 40일 뒤 일본 가는 ‘석가탄생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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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도와 백자관음상(중국)을 한데 모은 전시실. 사진 호암미술관

관음도와 백자관음상(중국)을 한데 모은 전시실. 사진 호암미술관

정병을 든 왼손, 흘러내린 옷주름, 그리고 살짝 입꼬리를 올린 미소! 이런 미소는 백제인만이 만들 수 있었다. 7세기 중반 제작된 걸로 추정되는 높이 26.7㎝ 백제 ‘금동 관음보살입상’이다. 부여 규암리 출토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가져갔다가 2018년에야 존재가 알려지며 ‘백제의 미소’라는 별명을 얻었다.

호암미술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특별전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금동 관음보살 입상'(높이 26.7㎝). 일본 소장가에게서 빌려왔다. 사진 호암미술관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금동 관음보살 입상'(높이 26.7㎝). 일본 소장가에게서 빌려왔다. 사진 호암미술관

당시 문화재청이 최대 42억원에 사들여 환수하려 했으나 소유자가 150억원을 제시하며 협상이 결렬됐다.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25일 개막한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특별전 출품을 위해 빌려와 거의 80년 만에 귀향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 불교 유물 속 여성 이야기를 주제로 한 특별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 장면. 맨 오른쪽이 독일 쾰른 동아시아미술관 소장 '석가출가도', 그 옆이 일본 혼가쿠지(本岳寺) 소장 '석가탄생도', 사진 호암미술관

동아시아 불교 유물 속 여성 이야기를 주제로 한 특별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전시 장면. 맨 오른쪽이 독일 쾰른 동아시아미술관 소장 '석가출가도', 그 옆이 일본 혼가쿠지(本岳寺) 소장 '석가탄생도', 사진 호암미술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불교 미술의 걸작 92점을 한 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는 '여성과 불교'라는 이색적인 키워드로 기획됐다. 이승혜 책임연구원은 “현대미술에서 여성을 조명하는 여러 움직임을 보며 불교 미술에도 많은 여성이 존재하는데 한 번도 조명된 적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고 말했다. 여성과 동아시아 불교미술의 관계를 조명하는 세계 첫 기획전의 탄생 배경이다.

리움미술관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ㆍ불교중앙박물관 등 9곳에서 국보 1건과 보물 10건 등 40건을 모았다. 이건희 컬렉션 9건도 포함됐다.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ㆍ보스턴미술관, 영국박물관ㆍ도쿄국립박물관 등지에 있는 불교미술품도 대거 귀국했다. 전시작의 절반이 넘는 47건이 해외에서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해방 후 처음 귀향한 ‘금동관음보살입상’이 그렇고, 세트로 추정되는 ‘석가탄생도’가 ‘석가출가도’ 나란히 걸리는 것도 처음이다.

'석가탄생도', 조선, 15세기, 족자, 비단에 채색, 금니, 그림 부분 145.0x109.5㎝, 일본 혼가쿠지 소장. 사진 오치아이 하루히코

'석가탄생도', 조선, 15세기, 족자, 비단에 채색, 금니, 그림 부분 145.0x109.5㎝, 일본 혼가쿠지 소장. 사진 오치아이 하루히코

(태자를 낳으신 후에) 부인이 나무 아래에 있으셨는데…

1447년 수양대군(후에 세조)은 아버지 세종의 명으로 어머니인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석가의 일대기를 썼다. 보물로 남아 있는 『석보상절』이다. 일본 혼가쿠지(本岳寺)에서 온 ‘석가탄생도’는 바로 이 장면이다. 석가를 출산한 마야 부인이 보리수 아래 대좌에 앉아 정면을 바라본다. 정수리에 네 마리 봉황이 달린 장식을 얹고 그 위에 가체를 올린 머리 모양은 조선 왕실 여성의 ‘큰머리’를 닮았다. 궁중의 큰 어른과 천신의 이미지가 겹쳐진 마야부인의 모습에서 그림으로 소원을 빌고자 했던 왕실 여성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석가출가도' 부분(15세기 조선). 태자의 출가 소식을 들은 왕(왼쪽 아래)과 왕비가 슬피 울고 있다. ⓒRheinischesBildarchiv Cologne

'석가출가도' 부분(15세기 조선). 태자의 출가 소식을 들은 왕(왼쪽 아래)과 왕비가 슬피 울고 있다. ⓒRheinischesBildarchiv Cologne

바로 옆 ‘석가출가도’에서는 태자의 출가를 알고 슬퍼하는 아버지와 아내의 모습을 공들여 그렸다. 독일 쾰른 동아시아미술관에서 왔다. 두 점은 한 세트였을 걸로 보인다. 조선 불화의 규범과도 같은 이 두 점이 어떤 운명으로 이국땅에 흩어지게 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귀향해 사상 처음으로 나란히 걸리게 됐지만 딱 40일 뿐이다. '석가탄생도'는 5월 5일까지 전시 후 일본으로 돌아간다.  

'백자 백의관음보살 입상', 중국, 명 혹은 청, 17~18세기.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컬렉션

'백자 백의관음보살 입상', 중국, 명 혹은 청, 17~18세기.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이건희컬렉션

불교는 여성을 어떻게 바라봤고, 여성은 불교에서 어떤 가능성을 봤기에 맹렬히 귀의했을까. 전시는 이 두 질문에서 출발했다. 새로운 미술은 후원자 없이 생겨날 수 없다. 불상ㆍ불화를 조성하며 과정과 염원을 적은 발원문에는 여성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공식적인 역사서나 불교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성들이다. 불교에서는 만물에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가르치면서도, 여성은 선천적으로 자질이 부족하여 여성의 몸으로는 성불할 수 없다고 했다. 해서 '감지금니 묘법연화경'을 만든 고려 여인 김 씨는 이런 발원문을 남겼다. 역시 국내 첫 공개다.

 고려 진한국대부인 김씨(辰韓國大夫人 金氏)가 충혜왕의 영가천도(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는 것)를 기원하고 충목왕과 그 모후를 축원하고자 조성한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중 권4 변상도’. 사진 리움미술관

고려 진한국대부인 김씨(辰韓國大夫人 金氏)가 충혜왕의 영가천도(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는 것)를 기원하고 충목왕과 그 모후를 축원하고자 조성한 ‘감지금니 묘법연화경 중 권4 변상도’. 사진 리움미술관

저는 이전 겁의 불행으로 여자의 몸을 받았으니…참으로 한탄스러울 뿐입니다. 이로 인하여 은 글자로 쓴 화엄경 1부와 금 글자로 쓴 법화경 1부를 만드는 정성스런 소원을 간절히 내어, 이제 일을 끝마치었습니다.

불전도(석가모니의 일생을 풀어낸 그림) 속 어머니로 묘사된 여성, 집착과 정념의 근원으로 간주된 여성의 몸, 여성의 형상으로 나타난 관음보살 등 불교 미술 속 여성의 모습을 모은 1부에 이어 2층으로 이어지는 2부에서는 숭유억불 정책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불교를 지지했던 왕실 여성들이 만든 불화와 불상, 머리카락을 바쳐 불보살의 형상을 수놓은 자수 불화를 볼 수 있다.

일본 중요문화재인 ‘자수 아미타여래삼존내영도’(13~14세기) 속 부처의 머리는 실제 머리카락으로 수놓았다. 호곤지 소장. ⓒTNM Image Archives

일본 중요문화재인 ‘자수 아미타여래삼존내영도’(13~14세기) 속 부처의 머리는 실제 머리카락으로 수놓았다. 호곤지 소장. ⓒTNM Image Archives

전시는 27일부터 6월 16일까지. 성인 1만4000원. 전시 기간 화~금요일 하루 두 차례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간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버스는 홈페이지에서 예약 후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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