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박수근·이중섭이 이런 그림을?" 美 유명전시관 위작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수근의 '와이키키'(1960년대 초반)라는 제목으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에서 전시중인 유화. 제목과 화가 이름은 한글로도 병기했다. 사진 독자

박수근의 '와이키키'(1960년대 초반)라는 제목으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에서 전시중인 유화. 제목과 화가 이름은 한글로도 병기했다. 사진 독자

파란 하늘에 흰 점을 툭툭 찍어 음영을 표현했다. 야자수가 있는 이 해변 풍경을 박수근(1914~65)의 ‘와이키키’라고 했다. 또 다른 유화 ‘세 명의 여성과 어린이’(1961년경)는 박수근 그림에 흔히 등장하는 아이 안은 여자, 광주리 인 여인, 주저앉은 여인의 뒷모습으로 화면을 꽉 채웠다.

박수근의 '세 명의 여성과 어린이'. "뒷면에 적힌 날짜상 1961년작, 다른 작품을 위한 습작으로 보인다"며 "기증자가 1960년대 서울에서 AFN 라디오 설립에 기여한 조셉 맥도널드 장군에게서 구입했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사진 독자

박수근의 '세 명의 여성과 어린이'. "뒷면에 적힌 날짜상 1961년작, 다른 작품을 위한 습작으로 보인다"며 "기증자가 1960년대 서울에서 AFN 라디오 설립에 기여한 조셉 맥도널드 장군에게서 구입했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사진 독자

연간 100만 명 넘는 관객이 다녀가는 미 서부 최대의 공립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에 걸린 박수근ㆍ이중섭 그림 네 점이 위작 논란에 휩싸였다. 미술관이 25일부터 공개한 ‘한국의 보물들’ 전시 출품작이다.

LACMA의 '한국의 보물들' 전시장 입구. 사진 독자

LACMA의 '한국의 보물들' 전시장 입구. 사진 독자

이중섭(1916~56)의 유화라는 '황소를 타는 소년'(1953년경)은 소의 몸통만으로 화면을 꽉 채운 이중섭의 대표작 ‘흰 소’와 달리 풍경화 위에 그의 ‘흰 소’ 이미지를 덧그리고 소 등에 소년도 태웠다. 타일 그림 '기어오르는 아이들'도 있다. '와이키키'와 '기어오르는 아이들'이 진품이라면 박수근의 미국 풍경화, 이중섭의 타일 그림으로 '세계 최초'다.

이중섭의 '황소를 타는 소년'(1953~54년). 사진 독자

이중섭의 '황소를 타는 소년'(1953~54년). 사진 독자

LACMA는 한 재미 교포가 2021년 기증한 100여점 중 35점의 한국 고미술과 근대미술ㆍ수석을 골라 전시를 열었다. 기증자에 대해서는 "LACMA 전 이사회 멤버이자 '명성황후'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조선 왕조 마지막 왕비의 후손"이라고 소개했다. 18세기 불화, 뚜껑을 포함한 높이가 67.5cm에 달하는 18세기 청화백자, 평양 출신으로 도쿄미술학교를 수석 졸업한 김관호(1890~1959)가 그렸다는 ‘딸의 초상’(1957)과 1950년대 풍경화, 월북 화가 이쾌대(1913~65)의 1950년대 초반 풍경화까지 출품작 면면이 다양하다.

국내 감정 관계자들은 “사진 이미지로만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박수근ㆍ이중섭, 그리고 북한에서 활동한 화가들로 구성된 그림들만큼은 출처와 진위가 의심스럽다”며 "선의의 기증이라도 미술관은 이를 검증해 전시 여부를 결정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중섭의 '황소를 타는 소년', 오른쪽 아래 '중섭'이라는 서명이 있다. 사진 독자

이중섭의 '황소를 타는 소년', 오른쪽 아래 '중섭'이라는 서명이 있다. 사진 독자

이 그림들을 직접 본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전 관장은 “수장고에서 10여 점을 본 뒤 박수근ㆍ이중섭ㆍ김관호 등 몇 점에 대해 '위작'이라는 의견서를 써 줬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22년 LACMA와 '사이의 공간: 한국미술의 근대'전을 공동 개최했고, 윤 관장은 이때 해당 그림들을 봤다. 윤 전 관장은 “필요하면 한국의 전문가와 감정기관에 원격 감정을 의뢰할 수 있다고 조언했는데 미술관이 전시를 강행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관객들이 '한국 근대 미술의 대표작이라는 것이 이런 수준인가' 오해할까 싶다"고도 덧붙였다. 한국미술품감정가협회장을 지낸 그는 “그림값이 비싼 박수근ㆍ이중섭 등은 지금도 꾸준히 위작이 제조ㆍ유통되고 있어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 전문가가 적은 미국의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건 아닐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1950년대 초반 이중섭이 타일에 그린 '기어오르는 아이들'"이라는 명제표와 함께 LACMA에 전시 중인 그림. 사진 독자

"1950년대 초반 이중섭이 타일에 그린 '기어오르는 아이들'"이라는 명제표와 함께 LACMA에 전시 중인 그림. 사진 독자

박수근의 장남 성남(77) 씨도 “거친 갈색을 주조색으로 우리 이웃들의 정감 어린 일상을 담은 아버지가 하와이의 파란 하늘을 그렸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인물화도 전형적 ‘짜깁기’다. 주요 인물 도상을 여기저기서 가져다가 맥락 없이 붙였다. 아버지의 인물화는 여백 미가 있고 인물이 갖는 스토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시로 아버지의 이미지에 흠이 갈까 안타깝다”라고도 했다.

아중섭의 외른쪽부터 이중섭, 박수근, 김관호, 이쾌대의 그림이 걸린 벽. 사진 독자

아중섭의 외른쪽부터 이중섭, 박수근, 김관호, 이쾌대의 그림이 걸린 벽. 사진 독자

검증 안 된 작품의 공개에 LA의 미술계는 술렁이고 있다. 지난 21일 VIP 오픈에 참석한 미술계 관계자는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근대 회화부터 한반도 모양으로 깎은 돌까지 방향을 알기 어려운 컬렉션이었다. 중국 미술 전문가가 기증을 받아 전시를 꾸렸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평양 출신으로 북한에서 활동한 김관호의 유화 '예술가의 딸'(1957). LACMA는 명제표에 "오른쪽 아래 '57 관호'라는 서명이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 LACMA

평양 출신으로 북한에서 활동한 김관호의 유화 '예술가의 딸'(1957). LACMA는 명제표에 "오른쪽 아래 '57 관호'라는 서명이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 LACMA

기증자는 2021년 당시 “고미술품은 명성황후의 15촌 조카인 외증조부와 어머니에게 물려받았고 한국 근대미술은 1970년대 초 한국에서, 북한 미술품은 워싱턴DC 등지에서 열린 비공개 전시회를 통해 사들였다”고 말한 바 있다. “이중섭은 재료가 없어 올리브 오일과 미군 차량 기름을 이용해 박스에 ’황소를 타는 소년'을 그렸다”라고도 했다.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수석. 사진 독자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수석. 사진 독자

LACMA 측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 진위를 의심하는 의견이 있는데, 진품으로 보는 근거와 검증한 전문가를 알려달라"는 중앙일보 질의에 대해 "아시아 미술부장인 스티픈 리틀이 3년간 미국과 한국에서 전시에 포함된 모든 작품을 상세히 조사했고, 그 연구 결과는 향후 발행할 도록에 게재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출품된 20세기 중반 유화는 기증자 집안에서 50년 이상 간직하던 것이며 추가 기증을 약속한 300점은 검토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