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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주꾸미 청자’가 일러주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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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혜란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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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낚은 주꾸미 기억하시죠? 2007년 태안 대섬에서 어부 통발에 걸린 주꾸미가 청자 접시를 안은 채 발견돼 이 덕에 발굴한 게 태안선입니다. 거기서만 유물이 2만5000여 점 나오면서 수중문화유산 발굴·연구가 크게 도약했죠.”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소속 양순석 학예연구관의 설명이다. 그는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갖고 바닷속 유물 현장을 20여년 누빈 베테랑 ‘수중고고학자’다. 태안선 조사를 포함해 직접 건져 올리거나 현장 수습에 참여한 문화재가 헤아릴 수 없다. 이 가운데 ‘청자 두꺼비 모양 벼루’ 등 태안·마도 수습 보물(국가지정문화재) 5건 7점과 관련 유물 83점이 서울에 나들이한다.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오는 23일부터 열리는 기획전 ‘수중고고학의 신비-서해 바다 침몰선’(5월 19일까지)을 통해서다.

2007년 태안 대섬에서 이른바 ‘주꾸미 청자’를 계기로 바닷속 유물을 탐사하는 모습. [사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2007년 태안 대섬에서 이른바 ‘주꾸미 청자’를 계기로 바닷속 유물을 탐사하는 모습. [사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국내 수중고고학의 시작은 신안선 발굴(1976~1984)이다. 이후 제주도·완도·진도 등에서 각종 난파선이 확인되면서 바닷속 유물에 관심이 쏠렸지만 단발성 화제에 그쳤다. 마침내 2006년 첫 수중문화재 탐사 선박 씨뮤즈호가 취항하고, 2007년 전담부서인 수중발굴과가 신설되면서 전문 탐사 시스템이 정착됐다. “침몰선이 있을 만한 곳을 노리고 수색하니 성과가 확 늘었다”고 양 연구관은 돌아본다. 이렇게 현재까지 22개 유적에서 16척의 난파선을 확인하고 11만여 점의 유물을 인양했다.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 서해와 서남해는 역사적으로 교역선과 조운선(漕運船, 세금으로 걷은 곡물을 실어나른 운반선) 왕래로 붐볐다. 육로가 원활하지 않던 시절 뱃길은 당대의 고속도로이자 KTX였다. 게다가 바다에서 나온 유물은 땅속 매장문화재와 성질이 다르다. 문경호 공주대 교수(역사교육과)는 “고분·능묘 중심의 매장 문화재가 당대 사회 지배층에 국한된 반면, 침몰선에서 나온 수저·그릇·곡식 찌꺼기 등은 뱃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교역했는지 보여주는 일상의 타임머신”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배에서 나온 목간(문자 기록용 나뭇조각) 분석을 통해 무역용 도자 유물의 연대가 특정되면서 관련 연구도 탄력받았다.

“수중유산 발굴은 항해·탐사·인양 등 첨단 기술이 집적돼야 하는데 우리 국력이 신장하면서 이 분야가 빛을 발하고 있다. 예산과 인력 양성이 뒷받침되면 앞으로도 캐낼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아시아의 문물 교류사를 연구해온 서강대 강희정 교수(동남아시아학과)의 말이다.

한반도 해저에 잠자는 난파선이 수백 척에 이를 테고 그만큼 21세기 수중고고학이 할 일이 많다. 이를 통해 돌아보는 해양 한국의 역사는 대륙 중심의 역사와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인도·태평양이란 키워드가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기에 박물관에서 만나는 ‘주꾸미 청자’들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