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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요?’ 대신 한동훈에게 필요한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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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허진 기자 중앙일보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허진 정치부 기자

최근 급격히 재부상한 정권 심판론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을 탓하는 목소리가 여권에서 비등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과 성정은 이미 2년간 겪어온, 국민의힘이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상수(常數)다. 그동안 이유 없이 정권 심판론이 컸던 건 아니지 않나.

문제는 변수(變數)로 기대됐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점차 상수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초보인 그에게 변화무쌍한 선거 기술을 바란 건 아니다. 하지만 최근 발언 패턴을 보면 그가 대충 어떤 말을 할지가 그려진다. 지난달 29일 기자가 ‘국민의힘 공천 과정에서 현역 교체율이 낮아 쇄신이 안 되고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하고 있는 건 쇄신이냐”고 반문한 게 대표적이다. 취재진이 국민의힘의 문제를 지적하면 이재명 대표를 끌어들여 반박하는 “이재명은요?” 화법이 거듭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월 국민의힘 경남도당 신년 인사회에서 참석자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모습.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월 국민의힘 경남도당 신년 인사회에서 참석자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엔 선거 메시지도 고착되고 있다. 국민의힘 선거대책위 발대식이 있던 지난 19일 하루에만 ‘종북(從北)’ 단어를 6번 이상 꺼냈다. 물론 종북 논란 인사의 국회 진입은 큰 문제다. 그렇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걱정인 대부분의 국민은 반복적 종북 표현보다 민생 문제 해법을 집권 여당 대표에게 듣고 싶을 것이다. 오죽하면 “공안 검사도 아닌데 왜 그리 종북 얘기를 좋아할까”라는 말이 나올까.

한 위원장이 전략적 사고를 통해 변수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현재로선 크지 않다. 공천 문제만 봐도 그렇다. ‘시스템 공천’을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현역 대부분과 친윤 핵심 모두가 살았고, 신인은 숨 쉴 틈이 거의 없었다. 반면 민주당 ‘친명횡재’ 공천이 시끄럽긴 했어도 안민석·김의겸·이수진(지역구) 의원 등 여권에서 평가가 좋지 않던 인사 상당수는 탈락했다. 법무부 장관 시절 한 위원장은 이들과 설전을 해봤기에 이들의 낙천 필요성에 공감할 것이다.

한 위원장이 공을 들여 영입한 김영주·이상민 의원 등 ‘귀순 용사’를 곧바로 공천을 준 게 패착이란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에서 핍박받은 이들이 무소속 출마를 했더라면 3자 구도가 형성돼 국민의힘의 승리 가능성이 더 커졌을 수 있다. 더욱이 민주당에서 이미 4·5선을 한 의원들이 파란색 대신 빨간색 점퍼를 입고 나타난다고 감동할 유권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4·10 총선은 이제 20일 남았다. 대중은 예상하지 못한 서프라이즈에 반응한다. ‘이재명이 더 나빠요’ 대신, 셀카 속 밝은 미소 대신, 바싹 엎드려 읍소를 하는 처절한 모습에 유권자는 좀 더 반응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