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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때 판 ‘탕후루’ 뭐길래…‘SKY 아들’ 실체에 부모 쓰러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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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낮엔 학생, 밤엔 마약밀매상

대한민국 마약루트를 가다

한국은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닙니다. 특정 직업군의 일탈이 아니라 회사원·주부·학생도 마약에 손을 댑니다. 나약한 개인의 몰락이 아니라 사회적 붕괴의 조짐입니다. 외국처럼 약에 쩔은 이들이 거리에 나뒹굴지 모릅니다. SKY대도 진학한 우등생이 10대 때 마약 거래를 했다가 징역 10년을 받은 충격적 사연을 소개합니다.

지난해 서울 지역 대학생 3명이 고교 시절부터 마약을 몰래 팔아오다 경찰에 적발돼 충격을 줬다. 입시학원 친구 사이였던 이들은 단기 5년~장기 10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철창에 갇혔다. ‘마약 루트’ 취재팀은 10대 청소년들의 마약 범죄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 사건의 전말을 추적했다.

사건은 202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3학년 A군은 성적이 좋았다. 수시 1차 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했다. 그것도 명문 SKY 대학 중 한 곳이었다. 학원에서 만난 B군과 C군도 서울 지역 대학에 수시 합격했다. 그런 그들이 마약 밀매의 상선(공급책)이었을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고교 우등생 3인방은 처음부터 마약으로 돈을 벌 생각은 아니었다. 호기심에 한번 시작해본 마약 밀매는 놀라울 정도로 쉬웠다. 텔레그램이나 다크웹에 떠 있던 마약 광고를 보고 시험 삼아 주문을 넣었다. 물건은 국제우편으로 정확하게 도착했다. 그리고 텔레그램 등에 판매 광고를 올리고 이문을 붙여 되팔았다.

범죄는 점점 대범해졌다. 메스암페타민(필로폰)과 케타민·엑스터시까지 닥치는 대로 팔아 거액을 손에 쥐었다. 돈은 유흥비로 탕진했다. 서울 강남의 고급 술집에서 질펀하게 놀았다. 그러나, 꼬리가 길었다. 2023년 어느 날, 위장 거래에 나선 경찰에 붙잡혔다. 법원은 처음엔 미성년자인 점을 고려해 구속은 면하게 해줬다.

한 번 맛들인 마약의 세계는 달콤했다. 수사 와중에도 강남 업소를 드나들었다. 추가 범행 정황이 드러났다. 두 번의 관용은 없었다. 결국 단기 5년, 장기 10년형, 소년범 법정 최고형(살인 등 특정강력범죄 제외)이 선고됐다. 법정은 눈물바다였다. 믿었던 모범생 아들의 배신에 실신한 부모도 있었다. 대학 합격은 모두 취소됐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마약 범죄자는 갈수록 연소화(年少化) 추세다. 대검찰청 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2019년 239명이던 전국 10대 마약류 사범은 2020년 313명, 2021년 450명, 2022년 481명으로 조금씩 늘더니 지난해 1483명으로 폭증했다. 신준호 수원지검 안산지청 차장검사는 “마약 공급이 늘면서 가격이 내려간 데다 인터넷 발달과 디지털화로 주문 등 접근성이 용이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한덕 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팀장은 “상담을 요청하는 많은 청소년이 호기심에 마약을 시작했다고 말한다”며 “인터넷·사이버 세상에 더 많이 노출되면서 그 안에 있는 마약 관련 정보에 접근하는 경우도 늘었다”고 분석했다.

지인의 권유로 마약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일진’들은 조폭 선배에게서 처음 마약을 배운다. 투약에서 그치지 않고 ‘알바’로 이어질 때도 있다. 마약 배달 최종 단계인 ‘던지기’에 동원된다. ‘MZ 조폭’들은 나이가 30대 초중반이다. ‘아는 동생’에게 마약을 특정 장소에 배달하게 시키면 그들은 다시 하청을 준다. 그 재하청이 일진에게 배당되는 사례가 자주 발견된다. 부산에서 청소년 대상 마약 중독 상담을 하는 이요진 상담사는 “일진들이 조폭의 SNS에 올라온 명품이나 돈다발 사진에 혹해서 면접을 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신종 ‘은어’도 양산된다. “요즘 청소년 사이에서는 펜타닐을 뜻하는 ‘탕후루’가 핫한 용어예요. 거기에 당도를 붙이면 펜타닐 농도를 말하는 표현이 되죠. 예를 들어 ‘탕후루 제일 달게’라고 하면 ‘가장 강한 펜타닐’을 의미합니다. 게임 ‘마인크래프트’의 계급을 마약의 강도에 빗대 표현하기도 합니다.”(이요진 상담사)

10대 마약을 근절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영창 인천지검 강력범죄부장은 “마약 시장이 커지면서 아무리 범죄자를 잡아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라며 “예방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인천의 한 고등학교. 200여 명이 ‘마약, 끝은 같습니다’라는 제목의 강의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강사로 나선 왕용식 인천지검 수사관은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마약으로 큰돈 벌고 이런 건 현실에서 없습니다. 무조건 잡히게 돼 있습니다. 한 번만 걸려도 인생 망치는 겁니다. 이런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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