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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5 중 3곳 교수들 사직 결의…의료계 "당장 병원 안 떠날 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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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1호 02면

의료 공백 한 달 눈앞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들이 15일 오후 시국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원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들이 15일 오후 시국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정원 증원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음 주면 의료 공백이 한 달째로 접어든다.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본격적으로 집단 사직한 때는 지난달 20일. 한 달여 만에 의대 교수들이 전공의들의 사직 행렬에 동참할 가능성이 커졌다. 중증 환자들은 “이제 어디서 치료받아야 하나”라며 중소 병원을 알아보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가 강공으로 대치하는 현재. 하루하루가 의료 공백의 분수령이 되고 있다.

18일은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 제출을 예고한 날이다. 서울대·가톨릭대·울산대는 자발적 사직 결의를 마쳤다. ‘빅5’ 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3곳서 이런 뜻을 모은 것이다. ‘빅5’ 수련병원 중 연세대와 성균관대 의대 교수들도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교수들 사직 소식에 환자들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암 환자 커뮤니티에는 주치의 사직을 염려하며 수술이나 항암 치료 등이 미뤄질까 우려하는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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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서울대병원에서 대장암 수술을 앞둔 남편을 둔 보호자는 “지난달 29일 수술이 예약돼 있었는데 이번 달로 미뤄졌다가 다시 6월 30일로 연기됐다”며 “우리 병원 교수님도 사직서를 내시느냐고 물으니 정해진 게 없다고 하더라. 눈물이 나고 말문이 막힌다”고 했다. 다음 달 3일 수술을 앞둔 식도암 환자 정모(67)씨도 “삼킴 장애가 있어 확장술을 받지 않으면 먹지 못한다”며 “전국에 이 수술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 일정이 연기되면 해외에 나가서라도 수술을 받아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더라도 전공의들처럼 병원을 당장 떠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빅5’ 병원 관계자는 “이미 수술과 외래를 절반 정도 줄인 상태라 (현재의 진료가) 유지될 것으로 본다”며 “당장 진료를 손 놓는 건 아닐 것”이라고 했다. 다른 ‘빅5’ 관계자도 “내주 예정된 외래들은 정상 진행하는 것으로 환자들에게 안내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측도 “사직서를 내더라도 수리되기 전까지 환자 진료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방재승 서울대 의대 교수협 비대위원장은 “2000년 의약분업 당시처럼 참의료진료단 식으로 진료를 이어갈지, 자원봉사 형태로 할지 18일에 다시 총회를 열어 의견을 들어볼 것”이라고 했다.

교수들 사이에서 사직서 제출에 대한 이견이 있어 얼마큼 의료 현장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충격을 줄지도 미지수다. ‘빅5’의 한 교수는 “사직은 답이 아니고 잘못된 시그널만 줄 뿐”이라며 “정부가 소통을 원치 않는 상태에서 사직은 학교나 병원에 대한 배신 의미 외에 없다”고 했다.

의대 교수들이 사직 결의를 하는 이유는 제자들인 전공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사직 의사를 전한 전공의는 아직도 전공의다. 각 병원에서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고 있어 신분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은 사직 한 달이 지났으니 해당 전공의 신분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민법 제660조를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민법 제660조에는 ‘고용인과 피고용인 사이에 근무 기간에 관한 약정을 따로 하지 않은 경우, 피고용인은 계약 해지를 통고할 수 있고 한 달이 지나면 해지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돼 있다. 서울시의사회 홈페이지 구인·구직 게시판에는 구직 신청하는 전공의들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기도 하다. 정부는 그러나 민법 제660조는 ‘고용 기간의 약정이 없는’ 근로자에 해당해 수련 기간이 정해진 전공의들은 예외 사항이라고 못 박았다. 15일 보건복지부가 사직서를 낸 10명 이내의 전공의가 다른 의료기관에 등록됐다며 “처벌 대상이 된다”고 경고한 것은 이 때문이다.

법조계 해석은 정부와 엇갈린다. 노동법 전문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민법 제661조는 ‘고용 기간의 약정이 있는 경우에도 부득이한 사유 있는 때에는 각 당사자는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라며 “부득이한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라면, 30일을 기다릴 것 없이 바로 해지의 효력이 발생한다”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전공의 사직 효력이 부정될 경우 이런 처리 기준이 향후 편의점·주유소·식당 아르바이트생 및 공장 노동자, 사무직 인턴 등 모든 근로자에게도 일반화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라고도 덧붙였다.

의대 교수들의 움직임과 관련, 전병왕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통제관(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진료를 거부한 전공의들이 환자 곁으로 조속히 돌아오도록 하는 게 교수님 역할”이라며 “집단 사직으로 환자의 생명, 건강을 위태롭게 하는 건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정부는 전공의·전임의 이탈 등에 맞춰 이미 여러 카드를 내놓은 상태다. 비상 진료 체계를 최대한 유지해나가겠다는 방침이 뚜렷하다. 중대본 관계자는 “사직서를 내는 것까진 있을 수 있지만, 실제 진료에서 빠지는 건 가정하지 않고 있다. 여러 학회 차원에서 진료는 이어가겠다고 밝히고 있어 바로 차질이 올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는 “실제 이탈이 있을 경우 더 비상상황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개원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인력을 추가로 채용하거나 의료 이용 조정을 더 강하게 하는 등 가능한 모든 걸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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