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심상찮은 북핵 묵인·타협론, 비핵화의 위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81호 30면

푸틴의 ‘북 자체 핵우산 보유’ 발언 매우 위험

미군사령관 “북의 핵 사용 방지로 초점 이동”

험난해도 비핵화 원칙 유지가 국익에 더 부합

미국과 러시아에서 최근 우려할만한 몇 가지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북핵 묵인 또는 방관으로 비칠 수 있는 언행들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된 대한민국의 안보를 생각하면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러시아 지도자의 발언이 특히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13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은 자체 핵우산을 갖고 있다”고 발언해 충격을 줬다. 그동안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반대해온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을 묵인한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은 최근 ‘한미연합사 전시지휘소(CP TANGO)’에서 진행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북 억제의 초점이 북한의 핵 능력 발전 저지에서 핵무기 사용 방지로 바뀌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북한이 선제 핵 공격을 포함하는 핵 무력 정책을 헌법에 명시한 상황에서 한·미 동맹의 철통 같은 방어 의지를 강조한 발언일 수 있겠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 무장 저지가 미군의 일차적 관심사에서 벗어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달 초 서울에서 열린 ‘중앙일보-CSIS 포럼 2024’에서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보좌관은 북핵 해법에 대해 “전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interim steps)’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중간 단계란 핵 동결이나 감축에 상응해 대가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전제했지만, 완전한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으니 차선책을 통한 절충·타협을 고민한다는 취지로 비칠 여지를 남겼다.

북·러 비밀 무기 거래 와중에 러시아는 공공연하게 북핵을 묵인하는 발언을 내놓고, 대선을 앞둔 미국도 비핵화보다 핵 공격 대응 및 차선책에 초점을 옮긴다면 매우 걱정스럽다.

문제는 현상을 타개할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대화는 사실상 파탄 났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부터 남북 관계가 냉각됐고, 최근엔 북한이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면서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기에 ‘담대한 대북 구상’을 제시했지만,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비핵화 대화보다 위기관리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외교부에서 비핵화 협상을 전담해온 한반도평화교섭본부를 18년 만에 폐지하고, 외교전략정보본부를 신설했다.

북한이 대화를 외면하는 데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대립 구도가 굳어지면서 비핵화의 길이 더 험난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장하는 길은 현실적 제약 때문에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일관되게 견지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 전략임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미·일 등 우방뿐 아니라 중·러와 국제사회를 향해 이런 메시지를 꾸준히 발신하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한의 기습 도발이나 무력 충돌에 대비해 한·미 동맹의 확장 억제 역량을 한층 강화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라도 우라늄 농축 기술 확보 노력은 필요하다. 미사일과 잠수함 등 전력 강화로 자주국방 역량도 키워야 한다. 이와 동시에 우발 충돌을 피하기 위해 지난해 4월 이후 끊어진 남북 핫라인을 복원하기 위한 물밑 대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단기간에 남북 직접 대화를 재개하기 어렵다면, 미국·일본·중국 채널을 통한 우회로를 찾아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