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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정완의 논설위원이 간다

‘벚꽃 엔딩’ 농담 아니었다…1년에 한 곳씩 지방대 폐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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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주정완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2000년 이후 21번째 폐교-태백 강원관광대

주정완 논설위원

주정완 논설위원

또 한 곳의 대학이 문을 닫았다. 이번엔 강원도 태백의 강원관광대(옛 태성전문대)다. 1995년 개교한 사립 전문대인 이 학교는 지난달 말로 29년 역사의 마침표를 찍었다. 2000년 이후 대학 폐교는 전국에서 21번째, 강원도에선 동해시 한중대에 이어 두 번째다.

남은 학생의 대부분은 태백에서 자동차로 2시간가량 떨어진 충북 음성의 사립 전문대인 강동대로 편입했다. 태백 지역 사회에선 ‘먹튀’라는 말까지 꺼내며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일부 시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폐교 인가 취소 소송 등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YS 정부 때 개교한 사립 전문대
한때 학생 2500명 넘기며 활기

재단 비리, 교직원 파업에 휘청
마지막 남았던 간호학과도 폐지

“땅도 기부하고 장학금도 줬는데”
비대위 출범 등 지역 반발 커져

학생 사라지자 주변 상권도 썰렁

지난달 27일 강원도 태백의 강원관광대 교문 앞에서 바라본 풍경. 주정완 기자

지난달 27일 강원도 태백의 강원관광대 교문 앞에서 바라본 풍경. 주정완 기자

지난달 27일 오후 태백 황지동의 강원관광대 캠퍼스를 찾아갔다. 교문 앞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텅 빈 운동장에는 눈만 쌓여 있었다. 다른 학교 같으면 봄학기 개강을 앞둔 시점이지만 모든 학생이 떠나간 캠퍼스는 썰렁하기만 했다. 빨갛게 녹슬어 가는 교내 안내판은 폐교의 차가운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골프산업과와 실용음악과 등이 있던 산학관 입구는 단단한 쇠사슬로 묶여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카지노과·호텔관광과 등 특성화 학과가 있던 관광관 건물도 굳게 잠겨 있었다. 한때 신입생 입학 원서를 받던 웅비관 건물로 발길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졸업 가운과 학사모가 놓인 탁자가 눈에 띄었다. 그 옆에는 ‘2024년 학위수여식 포토존 운영 안내’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졸업생들이 각자 알아서 기념사진을 찍고 가라며 임시로 설치한 사진 촬영 구역이었다.

학생이 사라진 대학 주변 상권은 활기를 잃었다. 대학길로 불리는 교문 앞 거리엔 문을 닫은 식당과 카페 등이 수두룩했다. 어쩌다 영업하는 곳이 있어도 손님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한중대 캠퍼스 ‘공포 체험장’ 전락

폐교한 강원관광대 운동장과 지성관(본관) 건물 모습. 주정완 기자

폐교한 강원관광대 운동장과 지성관(본관) 건물 모습. 주정완 기자

같은 날 오후 동해시 지흥동의 한중대 캠퍼스도 둘러봤다. 6년 전 강원도 폐교 1호였던 대학이다. 여러 차례 매각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무산되고 아직도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그사이 대부분 시설은 폐허로 방치됐다. 일부 개인 유튜버들은 흉물이 된 건물 안을 돌아다니며 공포 체험 영상을 찍기도 했다. 폐교 이후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대학 캠퍼스가 어떤 모습으로 전락하는지 보여줬다.

졸업생 기념사진을 위한 포토존. 주정완 기자

졸업생 기념사진을 위한 포토존. 주정완 기자

현재 본관 건물 입구는 두꺼운 합판을 여러 장 덮어 사람의 출입을 막았다. 그 앞에는 고장 난 트럭 한 대가 욕설이 적힌 낙서와 함께 버려져 있었다. 문이 열린 작은 건물을 들여다봤더니 안쪽 벽에는 곰팡이가 가득 피어 있었다. 캠퍼스 안에서 온전한 곳은 동해시 창업보육센터로 쓰는 건물뿐이었다. 원래 대학 시설이었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는 시설로 바꾼 덕분에 살아남았다.

“학생도, 학부모도 싫다고 한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벚꽃 엔딩’의 속설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서울에서 거리가 먼 순서대로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져 폐교 위기에 놓인다는 얘기다. 최근에는 한 해에 한 곳꼴로 문을 닫는 추세다. 2020년 부산 해운대구의 동부산대, 2021년 전북 군산의 서해대, 2022년 전남 광양의 한려대에 이어 지난해엔 경남 진주의 한국국제대가 폐교했다.

강원관광대도 처음부터 부실 대학이었던 건 아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개교하고 2년 뒤 입학 정원이 1280명까지 늘었다. 한때 재학생 2500여 명으로 태백 지역 인구 유지와 경제 살리기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교비 횡령이란 학교법인(분진학원) 비리가 발목을 잡았다. 2002년부터 8년간 교육부가 파견한 임시이사(관선이사)가 학교를 맡았다. 2010년에는 기존 법인 임원이 복귀하고 이사장 부인인 원재희 총장이 취임했다. 당시 원 총장은 태백시민 토론회에서 “법원 판결에서 ‘교비를 법인비로 전환한 것이 횡령’이라고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단 한 푼도 이익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19년에는 교직원 노동조합의 장기 파업 등으로 극심한 학내 갈등을 겪었다. 당시 노조는 ▶‘유령 학생’ 등 재학생 충원율 조작 ▶보복성 인사 조처 등으로 학교 운영이 위기를 맞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재학생 충원율을 조작해 정부 지원금을 받은 혐의로 원 총장을 기소했다. 이후 법원은 “피고인이 구체적 지시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는 사이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은 커졌다. 2020년에는 간호학과만 남기고 호텔관광과 등 여섯 개 학과를 모두 없애기로 결정했다. 2022년에는 정부의 재정지원 제한 대학으로 꼽히면서 학생들에 대한 국가장학금 지원과 학자금 대출이 끊겼다. 지난해 9월에는 올해 신입생 모집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1월 16일 강원관광대 폐교에 대한 공청회에서 원 총장은 “학생도, 학부모도 싫다고 한다. 지역 여건이 나빠서, 태백이라는 게 싫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교육부는 지난달 6일 이 학교의 자진 폐교를 인가했다.

“공청회는 요식행위, 시민 염원 배신”

학교 근처에서 송대섭 강원관광대 살리기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났다. 송 위원장은 태백에서 30년가량 시민단체 활동을 하며 강원관광대의 개교에서 폐교까지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과거 강원관광대 창업보육센터에서 특허 출원 지원 등 창업 컨설턴트로 활동한 적도 있다. 만학도로서 이 학교 골프산업과를 다니기도 했다. 다음은 송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비대위가 ‘먹튀’라고 주장한 근거는 뭔가.
“1994년 대학 설립 인가를 받을 때부터 태백 시민들은 한마음으로 학교가 잘되기를 응원했는데 배신 당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지역 유지는 당시 16만5290㎡(약 5만 평)의 땅을 기부하며 학교 설립을 도왔다. 태백시와 강원도가 학생 장학금 등으로 지원한 금액도 88억원이 넘는다. 학교가 살아야 지역이 산다는 애향심에서 만학도로 학교에 등록했던 시민들도 적지 않다. 학생 충원율 지표를 맞추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시민들에게 최소한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폐교를 결정했다.”
폐교에 앞서 공청회를 열지 않았나.
“지난 1월 12일 금요일 학교 측이 공문을 돌리고 나흘 뒤 화요일(지난 1월 16일) 오전에 공청회를 열었다. 생업이 있는 시민 대부분은 평일 오전에 참석이 어렵다. 현장에 가보니 학교 관계자와 취재진을 제외한 일반 시민은 거의 없었다. 나중에 교육부 보도자료를 보니 학교 측은 공청회 나흘 전에 이미 교육부에 폐교 인가를 신청했다. 공청회는 요식행위였을 뿐이다.”
폐교 말고 학교를 살리는 대안이 있었을까.
“학교를 매각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강릉영동대는 조건이 맞으면 학교를 인수하려고 했는데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과거 강원랜드가 학교 인수를 추진한 적도 있다. 2003년 태백지역 현안대책위원회와 강원랜드의 합의사항 중 여섯째 항목이 강원관광대 인수였다. 하지만 학교 측에서 매각 가격을 높게 부르는 바람에 무산된 것으로 안다. 이제는 지역 사회가 학교 공간을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강원랜드의 지원을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 닫아야 할 대학 절반도 안 닫았다”

양정호

양정호

벚꽃 피는 순서와 대학 폐교 위기의 상관 관계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연구도 있다. 양정호(사진)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가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지역 인재육성과 경제활성화를 위한 지방대학 발전방안’)다. 양 교수는 “2040년에는 지방대 절반 이상이 사라질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양 교수와의 일문일답.

지금까지 21개 대학이 폐교했다.
“21개가 많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여태까지 문 닫은 대학이 왜 21개밖에 안 되나, 그걸 고민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벌써 50개 정도는 문을 닫았어야 한다. 다른 50개 대학도 간당간당하다. 현재 정원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신입생을 채운다는 건 불가능하다. 출생아 수 통계만 봐도 간단하게 알 수 있다. 학생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나.”
대학의 ‘벚꽃 엔딩’은 어떻게 분석했나.
“서울 광화문을 기점으로 각 대학까지 거리를 일일이 계산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입시 경쟁률이나 신입생 충원율, 졸업생 취업률 등이 떨어지는 상관 관계가 분명히 나타났다. 그동안 말은 많았지만 이런 식으로 검증한 건 처음일 것이다. 다만 예외도 있었다. 부산의 한국해양대와 전남의 목포해양대가 대표적이다. 대학 특성화의 좋은 사례다.”
지방대학을 살릴 방법은 없을까.
“한계대학은 빨리 문을 닫게 해야 한다. 늦으면 늦을수록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진다. 정부가 학교에 직접 돈을 주지 않아도 학생에 대한 국가장학금 등으로 돈이 들어간다. 이런 학교가 끝까지 버티지 않도록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 살아남고 싶은 대학은 특성화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지방 학교끼리 뭉치는 건 잘못하면 같이 망하는 길일 수도 있다. 학생들이 원하는 게 뭔지 제대로 파악하고, 필요하면 서울의 대학과 연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