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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현철 논설위원이 간다

단열에 태양광 발전까지…에너지 생산하는 건물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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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현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성큼 다가온 제로에너지 건축물 시대

최현철 논설위원

최현철 논설위원

자동차를 바꿀 때 전기차를 살지 한 번쯤 고민하게 된다. 정부는 석탄 발전소를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대체할지 검토한다. 기업들은 신재생에너지를 쓰지 않으면 수출할 때 관세를 물게 될까 걱정이다. 어느새 탄소 줄이기는 일상의 고민이 됐다.

이런 변화가 건물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건축은 발전과 산업, 수송에 이어 탄소배출량이 4번째로 많은 분야다. 2018년 5210만 t을 2030년까지 3500만 t으로 32.8%나 줄이겠다는 감축 목표치가 나와 있다. 이미 그런 목표를 실현해나가는 건물이 하나둘 늘고 있다. 제로에너지 건축물이다.

노원 이지하우스, 패시브 건축 기술로 에너지 자립률 126%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제 도입, 지금까지 1057곳 본인증
공공임대도 인증 의무화…공사비 급증에 민간 확대 주춤
서울시 용적률 인센티브 검토…2030년 100조원 대 예상

패시브 건축의 이정표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위치한 노원 이지하우스 전경. 아파트 3개 동을 포함, 단독주택과 연립주택 등으로 구성된 이 단지에는 121세대가 실제 거주하고 있다. 2017년 준공된 이지하우스는 국내 제로에너지 건축 분야에서 이정표 역할을 했다.

서울 노원구 하계동에 위치한 노원 이지하우스 전경. 아파트 3개 동을 포함, 단독주택과 연립주택 등으로 구성된 이 단지에는 121세대가 실제 거주하고 있다. 2017년 준공된 이지하우스는 국내 제로에너지 건축 분야에서 이정표 역할을 했다.

제로에너지 건축물은 자체 생산하는 에너지로 사용할 에너지를 다 충당할 수 있는 건물이라는 의미다. 지난 12일 둘러본 서울 노원구 하계동 ‘노원 이지하우스’는 이 분야에서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한 건축물이다. 이름도 에너지 제로(Energy Zero)의 영문 첫 글자를 따 지었다. 노원구 중계동 학원가에서 하계역으로 이어지는 한글비석로에 위치한 이지하우스는 무심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모르고 지나칠 만큼 평범한 아파트 단지다. 아파트 3개 동, 빌라 1개 동과 복층형 단독주택 3채로 구성된 주택단지로 121세대의 주민이 실제 거주한다.

이 곳은 2013년 정부가 발주한 제로에너지 공동주택 실증단지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으로 출발했다. 이 과제를 이명주 명지대 교수팀과 서울시, 노원구, KCC 컨소시엄이 따냈다. 독일 유학 후 2003년 명지대에 부임한 이 교수는 건물 에너지 분야 전문가다. 독일은 이미 1990년대부터 단열, 고성능 창호, 공기 밀폐, 열전달 차단 등을 통해 에너지 소요량을 줄이는 패시브 설계가 도입됐다.

이 교수는 실증단지에 일종의 실험 주택부터 만들었다. 이곳에서 패시브 기술에 필요한 온갖 자재의 성능을 실험하고, 지어진 뒤 주택의 상황을 재연해가며 설계와 시공을 수정해갔다. 이 교수는 “당시에 처음 도입하는 방식이어서 대부분의 부품과 자재를 주문생산하고 일부는 수입해 썼다”며 “개별 부품과 장비는 설계대로 효율을 내는데, 전체 시스템으로는 조화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생겨 고생했다”고 설명했다. 이때 축적한 노하우가 국내 패시브 건축 시장 확대에 초석이 됐다.

패시브 설계의 기본은 단열. 일반 건축물은 벽 안쪽에 단열재를 넣고 내부 마감을 한다. 외부로 노출된 콘크리트 벽은 여름엔 구들장이 되고, 겨울엔 안쪽 열을 밖으로 내뿜는 에어컨 실외기가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이지하우스는 벽 바깥에 단열재를 붙이는 외단열을 채택했다. 블라인드를 창 안쪽이 아닌 바깥에 붙인 것도 같은 이유다. 삼중 유리 창문을 달고, 단열 부위에 열이 세는 것을 막는 테이핑을 했다. 단열재가 보강된 현관문은 냉장고 문 만큼 두껍다. 외부로 돌출된 발코니와 본체 벽 연결 부위에서 단열이 끊기고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위해 스테인리스 스틸을 용접한 철근이 들어간 차단재를 썼다. 그야말로 ‘열 셀 틈 없는’ 시공만으로 전체 에너지 소비량이 74%가량 감소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향동지구에 위치한 에너지엑스 DY 빌딩 전경. 상업용 건물로는 처음으로 제로에너지 건축물 1등급을 받은 건물로, 에너지 자립률이 121%에 이른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향동지구에 위치한 에너지엑스 DY 빌딩 전경. 상업용 건물로는 처음으로 제로에너지 건축물 1등급을 받은 건물로, 에너지 자립률이 121%에 이른다.

여기에 에너지를 자체 생산하는 액티브 기술을 더했다. 건물 옥상과 벽에 1274개의 태양광 패널을 달아 전기를 생산한다. 지하에 160m 깊이로 48개의 구멍을 뚫고 파이프를 박아 물을 주입하면 사시사철 15℃를 유지하게 된다. 이 물을 히트 펌프로 데우거나 식혀 냉난방과 급탕용으로 쓴다. 물론 히트 펌프도 태양광 발전에서 얻은 전기로 돌린다. 이 교수는 “비용이 더 들지만 조금 신경 써 지으면 생각만큼 크게 늘지 않는다”며 “결국 발상과 관심의 차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팀은 완공 이후에도 7년 동안 현장에 상주하며 건물 유지와 데이터 수집·분석 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상주하고 있는 이응신 교수는 “아무리 세심하게 설계를 했어도 실제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문제가 생기는데 이를 방치하면 애써 만든 실증단지가 순식간에 일반 주택으로 전락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제 설계 효율을 달성하고 있는지 분석하고 결과를 건축 전문잡지를 통해 발표했다. 2020년 분석치에 따르면 2017년 12월부터 28개월간 총 태양광 발전량은 97만㎾h, 히트 펌프와 일반 전력 사용량은 77만㎾h로 에너지 효율은 126%를 달성했다. 제로 에너지를 넘어 플러스 에너지 건물인 셈이다.

민간에도 확대되는 제로에너지 건축

노원 이지하우스가 한창 지어지고 있는 동안 국내 주택 분야 탄소절감 로드맵이 나왔다. 준공 무렵엔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제가 도입됐다. 에너지 자립률(사용량 대비 자체 생산량 비율)이 20% 이상이고 건물 에너지관리 시스템(BEMS)을 갖춰야 인증을 신청할 수 있다. 자립률 20~40%면 5등급, 100% 이상은 1등급을 받는 식이다. 2020년 1000㎡ 이상 공공 건축물부터 인증이 의무화됐다. 인증 없이는 인허가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지난해에는 500㎡ 이상 공공건물과 30세대 이상 공공 아파트도 대상에 포함됐다. 이제 신축 공공임대 아파트는 최소 20% 이상 자체 생산 에너지를 써야 한다. 올해부터는 30세대 이상 민간 아파트로 확대될 예정이었는데 당분간 연기됐다. 2030년부터는 공공, 민간부문 모두 연면적 500㎡ 이상 건축물 신축 시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을 받게 한다는 게 정부 로드맵이다.

현재까지 5241개 건물이 예비인증을 통과했고, 이 중 1057곳이 준공 후 실사를 거쳐 본 인증을 받았다. 자립률 20%만 넘기면 인증이 나오지만 100%를 달성한 1등급 건물도 66곳이나 된다. 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로드맵이 제대로 이행될 경우 제로에너지 건축물 시장 규모는 2030년 93조~107조원, 2050년에는 180조4000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

최초의 상업용 플러스에너지 빌딩

아직 인증 의무 대상이 아닌 민간에서도 시장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삼성물산이 부산 에코델타시티에 지은 스마트 빌리지, SK의 과천 게스트하우스, LG전자의 판교 씽크홈 등 대기업들이 시험 제작에 뛰어들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향동지구에 세워진 에너지엑스 DY 빌딩은 상업용 빌딩으로는 유일하게 인증을 받은 건물이다. 지하 2층 지상 5층에 연면적 3000㎡가 넘는 규모인데 1등급을 받았다.

에너지엑스는 정보기술(IT) 건축 플랫폼을 지향하는 스타트업이다. 건축주와 건축사·건설사(시공사)·관리회사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에너지엑스는 그 안에서 설계나 컨설팅을 했는데 점차 제로 에너지 건축 쪽으로 초점을 맞추게 됐다. 그동안 축적한 기술을 선보이고 새 기술을 실증·분석하는 테스트 베드로 쓰기 위해 직접 향동지구에 새 사옥을 지었다. 지난 14일 이 빌딩에서 만난 홍두화 공동대표는 “일종의 모델하우스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좀 들더라도 현재 구현 가능한 최고의 기술을 적용해 지은 건물”이라고 소개했다.

노원 이지하우스가 패시브 기술에 심혈을 기울였다면 이 건물은 액티브 쪽에 강조점을 뒀다. 우선 건물 외벽에 태양광 패널을 붙인 것이 아니고 외벽 자체를 태양광 패널로 마무리한 일체형 방식(BIPV)을 도입했다. 창에도 전기를 만드는 반투명 패널을 달았다. 물론 패시브 기술은 기본. 홍 대표는 “지열 시스템은 없지만 태양광 만으로도 건물에서 쓰는 에너지의 121%를 생산한다”고 말했다.

이 건물 5층엔 대형 모니터를 모아놓은 관제센터가 있다. 층별 에너지 사용량과 발전량 등을 표시하는 건물 에너지 관리 시스템(BEMS)이다. 에너지엑스는 이 시스템에 인공지능을 입혀 원격 제어하는 서비스 제공을 장기 목표로 삼고 있다.

건축비 부담에 속도 조절

그간 빠르게 확대되던 제로에너지 건물 인증 의무화는 올해 제동이 걸렸다. 건축비 상승 여파다. 제로에너지를 구현하려면 일반 건물보다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다. 건설산업연구원은 제로에너지 5등급을 달성하려면 비주거 건축물은 30~40%, 공동주택은 표준건축비보다 4~8% 비용이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인허가를 다 받은 재건축 단지도 건축비 부담을 이기지 못해 무산되는 마당에 이런 추가부담을 안으라는 요구가 무리라는 판단이다. 그래서 올해 도입하려던 30세대 이상 민간 공동주택의 인증 의무화는 일단 연기됐다.

그렇다고 한정 없이 밀릴 것 같지는 않다. 국제사회에 매년 탄소 감축량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빠듯하게 짜인 계획인데, 한 분야를 봐주면 다른 분야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인센티브를 늘리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 서울시는 재건축 때 제로에너지인증을 받으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용적률 300%로 30층 높이를 계획 중인 단지가 인증을 받게 되면 34층까지 지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