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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해도 붙잡지마라"…이길여가 'X' 표시한 환자의 정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청춘’ 총장의 마지막 꿈

청춘 이길여

92세의 나이에 ‘우주 최강’이라는 ‘비현실적 동안’ 이길여 가천대 총장의 건강 비결과 교육 철학을 들어보시죠. 더중플에 인기 연재 중인 ‘청춘 이길여’를 세 차례에 걸쳐 지면에 소개합니다. 이번엔 90대의 나이에도 직원들은 물론, 증손자뻘인 학생에게도 인기를 얻는 그의 소통과 나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소형 전기버스 ‘무당이’. 오르막길을 다니는 학생들을 위해 도입했다. 남윤서 기자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소형 전기버스 ‘무당이’. 오르막길을 다니는 학생들을 위해 도입했다. 남윤서 기자

지하철 가천대역 1번 출구 앞 분수광장에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빨간 현수막이 걸려있다. “학생이 왕이다.” 식당에 종종 붙어있던 ‘손님이 왕이다’가 떠오르는 문구다.

왜 이런 현수막을 걸어놨는지를 이길여(92) 가천대 총장에게 물었다. 이 총장은 “학교는 왕으로 모실 테니 너희는 왕답게 리더가 되라는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며 “조금 오버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학생이 어려서부터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게 해주고 싶다”고 답했다.

이 총장을 오래 만나온 사람들은 이것이 그만의 소통법이라고 말한다. 뇌리에 박힐 정도로 긍정적 반응을 계속 해준다는 것이다. 그는 증손자뻘인 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누린다. 지난해 가천대는 ‘가천 매력 TOP10’ 후보를 선정하고 학생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 결과 압도적 1위는 이 총장이었다.

가천문화재단이 이길여 총장 자택 마당에 짓고 있는 가천의료사교육관. [사진 가천대]

가천문화재단이 이길여 총장 자택 마당에 짓고 있는 가천의료사교육관. [사진 가천대]

이 총장에게 비결을 묻자 “사랑을 주니까”란 답이 돌아왔다. 대학을 처음 인수했을 때부터였다. 1998년 경원대를 인수한 그는 낡은 책걸상부터 바꿨다. 의자 수십 개를 늘어놓은 뒤 학생들이 직접 앉아보고 투표하게 했다. 이 총장은 “스스로 왕이란 생각이 들려면 책상, 의자부터 좋아야 하지 않겠느냐. 비싸도 아끼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캠퍼스 내에는 무당벌레 모양의 소형 전기버스 ‘무당이’가 돌아다닌다. 이 역시 이 총장이 “학생들이 오르막길 오르는 게 안쓰러워서” 만든 것이다. 2012년에는 하와이에 글로벌센터도 만들었다. 당시 하와이를 방문한 이 총장은 해변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중국 학생들을 보고 ‘우리 학생들도 오게 해주고 싶다’ 생각했다. 곧바로 2주간 발품을 판 끝에 오래된 호텔 건물을 사고 1년 만에 리노베이션까지 마쳤다.

최미리 수석부총장은 “총장은 평소 생활은 검소한데 수십·수백억원이 드는 일은 무섭게 빨리 결정할 때가 있다. ‘학생에게 도움이 되나’는 것만 생각하니 결정이 쉬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태훈 길병원 의료원장은 “누구든 ‘총장이 나를 제일 신임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나를 가장 믿어준다고 생각하니까 신이 나서 일하게 되고 더 잘 보이고 싶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최 부총장은 “총장이 호감을 얻는 건 특유의 리액션 때문”이라며 “좀 허황된 아이디어에도 ‘너무 좋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고, 어떻게든 되는 방향으로 만들어주려고 한다”고 소개했다.

가천대역 1번 출구 앞 분수광장에 걸린 ‘학생이 왕이다’ 현수막. 남윤서 기자

가천대역 1번 출구 앞 분수광장에 걸린 ‘학생이 왕이다’ 현수막. 남윤서 기자

이 총장에게 이런 인간적 매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물었더니 “먼저 애정을 줘야 한다”고 답했다. 학생이든, 직원이든 ‘먼저 준다’가 그의 소통 비결이다. 남에게 먼저 준다는 것이 그의 젊음의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김우경 길병원장은 “나만 잘 먹고 잘살면 저렇게 건강할 수 있겠는가. 늘 환자와 학생을 우선에 두니 따르는 사람이 많아 행복하고, 호르몬 체계도 긍정적으로 변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의사의 꿈을 꿨을 때부터 그의 삶은 봉사와 맞물려 있었다. 의사 얼굴도 보기 어려웠던 시절, 학교 갈 나이가 되기도 전에 죽는 친구들을 보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되겠다’고 생각한 그였다.

미국 유학을 갔다가 전쟁 나간 또래 청년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귀국했던 일이나, 가난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보증금 없는 병원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난한 환자들은 의료기록에 미리 X표를 해두고 모르는 척 진료비를 받지 않았다. 의료 취약지인 백령도에 백령길병원을 열고 적자 속에서 운영하기도 했다.

송진구 가천대 교수는 “자꾸 돈이 안 되는 일만 벌이는 경영자인데도 왜 성공하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가 찾아낸 비결은 ‘남을 도와주려면 매 순간 열심히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일이 원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이 총장은 마지막까지 남에게 줄 예정이다. 인천 옥련동에는 고서와 의료사 자료 등이 보관된 가천박물관이 있다. 이 총장의 자택은 그 박물관 바로 옆에 있다. 자택 마당에는 가천의료사교육관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완공되면 박물관은 물론 집까지 모두 기증할 계획이다.

“전 물려줄 자식도 없잖아요. 사는 동안은 환자와 학생에게, 떠날 땐 후세에 아낌없이 주고 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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