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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 2개안 확정, 기금 고갈만 7~8년 늦춘 땜질 처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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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연금개혁이 후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가 두 가지 안을 확정해 11일 발표했다. 34명으로 구성된 의제 숙의단이 2박 3일 합숙토론을 거쳐 확정했다. 다음 달 중 500명의 시민대표단이 투표로 둘 중 하나를 결정한다.

이날 확정한 1안은 소득대체율을 40%(2028년 기준)에서 50%로, 보험료를 9%에서 13%로 인상하는 안이다. 2안은 소득대체율(40%)을 그대로 유지하고 보험료를 12%로 올린다. 1안은 소득 안정 효과, 2안은 재정 안정 효과에 역점을 뒀다. 국민연금은 이대로 가면 2055년에 기금이 소진된다. 1안대로 하면 소진 시기가 7년, 2안은 8년 늦춰진다. 둘 다 보험료 납부의무 연령(현재 만 59세)을 64세로 늦춘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요란한 연금개혁 논란치고는 둘 다 결과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1안의 주목적은 노인 빈곤율 완화이다. 2022년 빈곤율은 38%이다. 2085년이 돼도 25.5%나 된다. 그러나 대체율 인상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단순하게 따지면 소득대체율이 40%일 때 생애평균소득 100만원인 사람이 40년 가입하면 노후연금 40만원을 받고, 대체율을 50%로 올리면 50만원 받는다. 하지만 40년 가입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평균 17~18년이다. 이 경우 대체율을 10%p 올려도 연금액이 17만원에서 21만여원으로 약간 오른다. 그것도 당장 오르지 않고 한참 후에 오른다.

반면 재정 지출은 엄청나다. 2062년 기금 소진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지출이 급증한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2093년 누적적자가 700조원(지금대로 가면 7750조원) 더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한다. 연금개혁의 주목적이 ‘70년 튼튼’인데 더 나빠진다. 그래서 기초연금 인상으로 풀자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지급 범위를 노인의 70%에서 40% 이하로 축소하고 연금액을 50만~60만원으로 올리는 방법도 있다. 윤석명 위원은 “소득대체율 50%로 올리려면 보험료를 25%로 올려도 부족하다”며 “후세대에게 더 큰 짐을 떠넘겨 개악이라는 지적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소득대체율 인상안은 지난해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보고서에서 빠졌다가 뒤늦게 들어갔다. 재정계산위에서 암묵적으로 의견이 모인 안은 ‘소득대체율 40% 유지-보험료 15%’ 였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시민 정서를 감안할 때 15% 인상을 제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2안으로 가면 26년 동결된 보험료를 처음 올린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윤 위원은 2안대로 하면 2093년 누적적자를 약 2000조원 줄일 것으로 추정한다.

오 위원장은 “1안이 미래세대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점을 의제숙의단이 충분히 검토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기초연금 등 7개 의제를 사흘 만에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500명의 시민대표단 토론에서도 이런 문제가 이어질 수 있다. 보험료만 올리는 걸 달가워할 국민은 없다. 34명의 숙의단에서도 소득대체율 인상에 더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윤석열 정부가 연금개혁을 미루고 국회가 책임을 회피하고서 공론화 토론 방식을 도입하는 바람에 연금개혁의 앞날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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