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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S 판매때 잘못 인정…배상은 책임따라 차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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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은행에서 주가연계증권(ELS)에 가입했다면, 개별 판매 과정의 문제와 관련 없이 일정 수준의 배상 비율을 적용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감독원이 은행의 ELS 판매가 설계부터 잘못됐다고 보고, 본사 차원의 책임을 물어 일괄 기본 배상 비율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다만 투자자 책임도 반영해 이 기본 배상 비율에서 가감하기로 했다. 이럴 경우 사례에 따라 배상 비율이 0~100%까지 다양해질 수 있다.

11일 금융감독원은 이 같은 내용의 ‘ELS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손실 배상 비율은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 책임이 종합적으로 반영되도록 했다”면서 “ELS 투자 경험이 많거나 금융지식 수준이 높은 고객 등에 대한 판매는 배상 비율이 차감되는 방식”이라고 했다.

홍콩H지수 관련 ELS 손실은 이미 올해 1~2월 1조2000억원이 확정됐다. 홍콩H지수가 2월 말 수준을 유지한다면 이 금액은 5조8000억원까지 커질 수 있다. 홍콩H지수 관련 ELS 가입 계좌는 지난해 12월 기준 39만6000개에 달한다. 다만 ELS 배상에 대해선 금융사 책임이라는 쪽과 투자자 책임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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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금감원은 우선 판매사 측면에서는 ▶적합성 ▶설명 의무 ▶부당 권유 금지 3가지 원칙을 얼마나 어겼는지에 따라 20~40%의 기본 배상 비율을 정했다. 특히 금감원은 올해 초 실시한 현장검사에서 대상 5개 은행(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 모두에 대해 적합성 혹은 설명 의무 위반을 확인했다. 이를 근거로 은행 ELS 가입자에게 20~30%의 기본 배상 비율을 일괄 설정했다. 예를 들어 A은행의 기본 배상 비율이 30%라면, 해당 은행에서 ELS를 가입했을 경우 일단 30% 배상을 적용받는 것이다.

여기에 각 판매 과정에서 부당 권유 같은 문제가 있었다면, 기본 배상 비율을 10%포인트 가산한다. 또 금융사 내부 통제 부실 책임을 물어 은행은 10%포인트, 증권사는 5%포인트 비율을 추가로 더한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증권사는 증권신고서 그대로를 판매할 때 전달했지만, 은행은 이를 (투자자에게) 상당 부분 손실을 축소해 전달해 책임이 더 크다”고 밝혔다. 다만 온라인으로 비대면 가입했다면 은행은 5%포인트, 증권사는 3%포인트만 가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기본 배상 비율이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금감원은 여기에 투자자별 상황을 고려해 배상 비율을 올리거나 깎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배상 비율은 0%가 될 수도 있고 100%가 될 수도 있다.

은행 배상액 2조 넘을 가능성“총선 의식한 배상 압박 포퓰리즘” 지적도

우선 금감원은 금융취약계층인 고령자 등에게 팔거나, 예·적금 목적으로 방문했다가 ELS에 가입한 경우, ELS 최초 투자자 등은 배상 비율을 올릴 필요가 있다고 봤다. 반대로 ELS 투자 경험이 많거나 과거 수익이 크게 난 경우, 금융지식이 풍부한 금융사 등에 근무했다면 배상 비율이 낮아진다.

예를 들어 은행 잘못이 인정돼 기본 배상 비율 50%가 적용됐다고 했을 때 투자자가 가입 당시 만 80세가 넘은 초고령자(15%포인트)이면서, 예·적금 가입 목적으로 방문(10%포인트)했다면 여기에 25%가 가산돼 총 손실의 75%까지 받을 수 있다. 65세 이상엔 5%포인트가 가산된다. 하지만 반대로 ESL 가입 경험이 51회를 넘고(-10%포인트), 과거 손실 경험이 있고(-15%포인트), 가입금액이 5000만~1억원(-5%포인트)이면서, 과거 ELS 누적 이익이 최근 손해를 초과(-10%포인트)했다면 실제 배상 비율은 0%가 된다.

이론상으로는 최대 100%까지 배상이 가능하지만, 실제 배상 비율은 과거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20~80%보다도 낮아질 수 있다. 올해 금감원 추정 손실액이 5조8000억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배상 비율이 20~60%로 정해질 경우 배상 금액은 2조원이 넘을 수 있다.

그만큼 불완전판매가 극심했다는 의미다. 실제 A은행은 미·중 갈등으로 홍콩H지수 변동성이 커지던 2021년 신탁 수수료 목표를 전년 대비 56.9% 오히려 올리면서 ELS 판매를 독려했고, 일부 은행은 핵심성과지표(KPI)에 ELS 판매 실적을 반영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이르면 다음 달부터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대표 사례에 대한 분쟁 조정 절차를 신속히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은 “또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 굉장히 죄송스럽고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배상안이 나오자 총선을 의식한 포퓰리즘 대책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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