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 하산 「택일」 바쁘다/노대통령 “전씨 귀경” 왜 비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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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공 불만세력 범여로 “포용”/백담사 의견듣고 본격 추진/평민 양해인상… 민주계 일부 거처 이견
백담사에서 2년 넘게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하산이 임박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24일 낮 청와대 출입기자단과의 송년오찬에서 마음먹고 전 전 대통령의 하산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피력하고 하산 당위성을 설명한 데 이어 백담사측의 반응도 일단 긍정검토 쪽인 듯하다.
전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24일 저녁 이미 계획돼 있던 안현태 전 경호실장 생일축하 모임에서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의견을 모아 이양우 변호사가 25일 새벽 백담사로 떠났고 이 변호사가 전 전 대통령의 뜻을 갖고 25일 밤이나 26일 서울에 돌아오면 청와대측과 본격적인 하산절차를 협의할 전망이다.
한편 노 대통령의 발언내용을 사전에 통보받았던 평민당이 김대중 총재 명의의 성명으로 『전 전 대통령이 어디서 살건 시비할 생각이 없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다만 민자당내 민주계 일부에서 전씨가 연희동 사저로 돌아가는 데 거부감을 보여 하산시기와 거처가 어떻게 결말날지 주목된다.
○YS도 때맞춰 거론
○…노 대통령이 전씨 하산에 대해 언급한 것은 상당히 의도적인 것으로 보여 청와대 주변에선 이미 백담사측과 이야기가 끝나 하산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
이같은 추측의 배경에는 노 대통령의 오찬이 있기 바로 직전 이수정 대변인이 백담사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예고를 했었고 오찬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민자당 쪽에서도 김영삼 대표가 성명을 냈기 때문이다.
또 이날 낮 각 언론사에는 안기부 쪽으로부터 사전 귀띔이 전달됐다.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청와대와 안기부가 사전에 전씨의 하산문제에 대해 깊은 협의를 했고 특히 보안이 철저히 지켜지는 안기부가 주도적으로 이 문제를 추진한 느낌이다.
노 대통령의 스타일로 미루어 이런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면 이미 분위기가 성숙되었고 백담사측과 의사교환이 있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전직 대통령 업무담당인 김영일 민정수석비서관은 『사전에 백담사측과 의사교환은 결코 없었다』고 부인하고는 『노 대통령의 말씀을 간절한 소망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여 달라』고 요청했다.
김 수석은 『두 분 사이의 우정은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연내에 신임인사를 겸해서 노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 백담사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백담사행을 밝혔다.
김 수석은 연말을 며칠 앞두고 노 대통령이 그런 희망을 피력한 이유에 대해 『이 추운 겨울을 또다시 산사에서 보내도록 해서야 되겠느냐는 간절한 뜻에서일 것』이라며 『대통령 입장에서 대통령 뜻을 국민에게 밝히고 국민의 이해를 구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 전 대통령의 하산에 대해 국민들의 여러 시각을 고려,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이해·납득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지자제 의식 여 결집
○…전 전 대통령의 하산문제는 지자제선거와 노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를 앞두고 정치권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
노 대통령이 이 시점에서 그 같은 예민한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13대 공천 등 6공정권의 확립기간에 소외시켰던 5공세력을 다시 범여권에 묶으려는 구도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최근 군내의 전 전 대통령 사람으로 알려진 김진영 교육사령관을 대장으로 승진시킨 것과 관련해 정가에서는 노 대통령이 서서히 5공세력의 명예회복을 꾀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노 대통령이 『우리 정치사는 과거를 부정하고 단절하는 나쁜 전통으로 얼룩져 왔다』는 말을 기회있을 때마다 했던 점을 고려할 때 5공과 화해하고 장래를 준비하려는 데서 전씨의 하산문제를 꺼냈으리라는 것이다.
특히 야당권에서는 전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의 끈끈한 관계를 지적,노 대통령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손으로 전 전 대통령의 명예를 어느 정도 회복시키고 지자제선거와 총선에서 범여세력을 결집시켜 야당에 대처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5공 인사들이 세력으로 잠복해 있는 한 임기후반의 안정적 정치운영에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세력들은 독자적인 정치조직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여왔으며 노 대통령의 정치운영 방향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대통령은 이런 점을 감안해 권익현씨를 특사를 내보내고 백담사에도 보내는 등 자주 의견을 듣기도 하고 박희도씨도 특사로 보냈으며 의원직에서 강제사퇴시켰던 정호용씨에게도 권씨를 보내 재기 가능성을 열어주는 등 배려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노 대통령의 뒤늦은 사후 수습이 그 동안 구여권내에 깊이 깔렸던 감정의 앙금을 말끔히 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긍정반응 직접 발표
○…평민당은 청와대와 백담사간의 줄다리기 과정에서 청와대측이 국민정서를 탐색키 위해 던진 말로 규정,공식대응을 유보했으나 25일엔 김 총재가 긍정적인 반응을 직접 발표.
김태식 대변인은 청와대측의 하산 종용에 백담사가 나름의 시기를 저울질 할 것이라며 사견을 전제로 하산 자체를 굳이 반대하지는 않으나 서울 거주 등에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했는데 정가에서는 야당측에 모종의 언질이 사전에 있었을 것이며 야당도 어느 정도 양해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파다하다.<이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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