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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반도체 거물' 젠슨 황 "나는 부모님의 꿈과 야망의 산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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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마약보다 구하기 힘들다는 물건이 있다. 엔비디아(NVIDIA)의 인공지능(AI) 반도체다. 6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엔비디아는 전거래일보다 3.18% 급등한 887.0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에 이어 미 증시 시총 3위 자리에 올라섰다. 엔비디아는 AI 시대가 올 것을 알았던 걸까? 엔비디아를 오늘로 이끈 최고경영자(CEO)인 젠슨 황(황런쉰·黃仁勳, 61)의 창업, 역경, 성공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가 보도된 가운데 그가 스스로를 설명한 한 문장이 눈에 띈다.

나는 부모님의 꿈과 야망의 산물이다

몇 해 전 CNBC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대만계 미국인인 젠슨 황이 어떤 가정 환경에서 양육되었는지, 그의 부모는 어떤 이력을 가진 사람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대만 타이난 출신인 젠슨 황은 5세에 가족과 함께 태국으로 건너가 4년 가량 거주하다, 9세에 부모 없이 한 살 터울의 형과 함께 미국에 살고 있던 외삼촌 집에 가게 된다.

젠슨 황의 부친인 황싱타이(黃興泰)는 대만의 명문대인 국립성공대학(國立成功大學) 화학공학과 출신이다. 황싱타이는 미국의 에어컨 제조사인 캐리어(Carrier) 대만지사에서 근무하던 중 직원 연수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미국의 번영, 진보, 높은 수준의 환경을 목도한 황싱타이는 마음 속으로 ‘두 아들을 반드시 미국에서 교육 시키겠다’라고 다짐한다.

그날 이후 젠슨 황의 모친인 뤄차이슈(罗采秀)는 아들을 미국에 보내기 위해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젠슨 황은 과거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영어를 잘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사전에서 영어 단어 10개를 무작위로 선택해 형과 나에게 철자와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라고 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내가 정답을 말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건 아버지가 품은 꿈과 어머니의 야망 때문”, “부모님께 진 빚이 많다”고 덧붙였다.

젠슨 황과 아내인 로리 밀스.

젠슨 황과 아내인 로리 밀스.

젠슨 황의 부모는 두 아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약 2년 후인 1974년 미국 오리건주로 이민했다. 당시 태국 상황이 내전으로 혼란스러웠던데다 두 아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외삼촌 집에서 기거할 수 없는 상황들이 겹쳤다. 대만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이른바 ‘맹모삼천지교’를 실현했다. 젠슨 황의 탁월함은 양친의 식견과 지원에서 비롯된 부분이 적지 않다.

부친 황싱타이는 지역에서 소문난 수재로 명문대를 졸업한 엔지니어였으며, 모친 뤄타이슈는 타이난 지역의 명문가 자녀로 고등 교육을 받고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경력이 있다. 놀랍게도 뤄타이슈 집안에는 제2의 엔비디아로 불리는 AI 반도체 기업 AMD의 최고경영자(CEO)인 리사 수(蘇姿丰, 쑤쯔펑)도 있다. 리사 수는 젠슨 황의 모친인 뤄타이슈의 오빠 쑤춘화이(蘇春槐)의 손녀다. 즉, 젠슨 황과 리사 수는 당숙·종질(5촌) 관계다. 지난 11월 CNN은 "공개된 기록, 신문 보도, 과거 사진 등을 조사하고 젠슨 황의 친인척 인터뷰를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AI 반도체 기업 AMD의 최고경영자(CEO)인 리사 수와 젠슨 황(왼) 바이두

AI 반도체 기업 AMD의 최고경영자(CEO)인 리사 수와 젠슨 황(왼) 바이두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젠슨 황의 외가 가계도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젠슨 황의 외가 가계도

친족 관계인 대만의 한 집안에서 AI 반도체 거물이 둘 씩이나 나오는 것을 우연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반도체 전쟁’을 쓴 크리스 밀러 미 터프츠대 교수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대만 경제는 반세기에 걸쳐 전자제품, 칩 조립·설계·제조 등 반도체 산업에 집중돼 왔다”며 “대만 출신 청년들은 반도체 산업과 관련해 진로를 고민해왔고 젠슨 황과 리사 수 역시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냈어도 이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젠슨 황의 부모는 그에게 넓은 세상을 경험할 기회뿐만 아니라 정서적 안정감도 제공했다. 2007년 상하이 둥팡위성TV 보스쇼(Boss Show, 波士堂)에 출연한 젠슨 황은 “부모님은 내게 항상 정직할 것,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말했다”며 “부모님의 지지와 충분한 사랑 덕분에 어려움 속에서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미 공영라디오방송(NPR)과의 인터뷰에서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오네이다 침례교 기숙학교에서 3년 넘게 화장실 변기 닦는 일을 전담했다”며 “힘든 시간이었지만 정말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고, 그곳에서 보낸 시간을 정말 사랑했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는 2019년에 이 학교 건축비로 200만 달러(약 26억 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4차 산업 혁명의 상징적 인물이 된 젠슨 황. 부모가 남긴 유·무형의 유산이 오늘의 그를 만든 가장 단단한 주춧돌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차이나랩 임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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