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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케이지수 사상 최고치…배후엔 열 받은 중국 투자자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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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항저우의 한 증권사 객장의 시황표 앞에서 한 여성이 머리를 매만지고 있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은 18일 지난해 외국인의 중국 직접투자액이 전년 대비 82% 감소한 수치를 발표했다. AP=연합뉴스

지난 5일 항저우의 한 증권사 객장의 시황표 앞에서 한 여성이 머리를 매만지고 있다. 중국 국가외환관리국은 18일 지난해 외국인의 중국 직접투자액이 전년 대비 82% 감소한 수치를 발표했다. AP=연합뉴스

1945년 이후 명실상부 세계 패권국이 된 미국의 도전국은 어떤 나라들이었나. 우선 미국과 냉전을 치른 소련이 있었다. 이념으로 세계를 양분한 두 나라의 경쟁은 단절적이었다. 안보에선 각기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기구라는 두 블록을 세워 적대했고, 경제 분야에서 미국은 마셜 플랜, 소련은 코메콘을 통해 동맹국들의 생존과 성장을 도왔다.

그다음 경쟁국은 일본이었다. 2차 대전 패전국으로 전락한 일본을 미국은 전략적 목적으로 부흥시켰고, 일본은 경제 대국으로 완벽하게 부활했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에 막대한 무역 적자를 안겼고 부동산 투자로 하와이와 미 본토 랜드마크 건물들을 사들였다. 견디다 못한 미국은 플라자 합의를 통해 달러 환율을 조정했고 일본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이후는 중국이다. 1970년대 초 소련 견제를 위해 중국과 손을 잡은 미국은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 2001년 미국의 주선으로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 본격적으로 국제경제 무대에 뛰어들었다. 중국은 미국에 자국 생산품을 수출해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였고 이 돈으로 미국 국채를 매집, 미 정부의 최대 채권국이 됐다. 2012년 시진핑 정권이 들어선 후론 미국과 체제·군사 경쟁을 벌어기 시작했다.

확실히 지금의 형세는 미중 경쟁 구도다. 앞으로도 이 구도가 이어질까. 4일 중국의 정기국회 격인 양회(兩會)가 개막했다. 리창 총리는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업무보고를 통해 지난해 보고 때와 동일한 5%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경기부양책은 언급하지 않았는데 경제 구조조정을 염두에 둔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시장은 실망스러운 반응을 내놨다. 곧바로 뉴욕 유가와 홍콩 증시가 일제히 하락했다. 언론들은 부양책 없는 고성장률에 ‘결여된 야심’이란 반응이었다.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알리시아 가르시아 헤레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에 "이번 발표는 계획 없는 목표에 불과하다"며 "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중국 당국의 이해가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내 많은 전문가들도 “공격적인 소비 진작 정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2049년까지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두 개의 백 년’ 목표는 요원해지는 분위기다. 니콜라스 번스 주중 미국 대사는 미 CBS와 인터뷰에서 인구 감소 등을 거론하며 "중국 경제는 앞으로 10년 동안 매년 2~4%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관측했다. 2035년까지 GDP를 2020년의 두 배 수준으로 늘리겠다는 중국의 목표는 15년간 연평균 4.7%의 성장을 필요로 한다. 반면 미국의 지난해 명목 GDP 성장률은 6.3%로 중국(4.6%)을 크게 웃돌았다. 미국 학계에선 ‘피크 차이나(Peak China·현재의 중국이 정점이란 의미)’ 담론이 득세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1월 "미국 경제가 왕좌를 내려놓은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의 상황과 비교되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지난달 26일 일본 증시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는 3만9185포인트로 마감하며 ‘버블 경제’ 시절이던 1989년 12월 29일 세운 사상 최고치 3만8915를 넘어섰다. 4일 오전에는 장중 4만264선까지 치솟으며 4만 대를 돌파했고 6일 현재도 4만 대를 기록 중이다.

‘거인 투자자’ 워런 버핏이 2800억 엔(약 2조5000억원)을 일본 증시에 투자해 최소 80억 달러(약 10조원)를 벌어들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버핏은 2020년부터 일본 주식에 투자해 왔다. 그의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가 2019년부터 투자한 일본 무역회사 5곳은 지난달 말 기준 수익률 185~402%를 기록했다. 월가를 비롯한 각국 투자자들이 일본 증시로 몰리고 있다.

특히 자국 주식 시장에 분노한 중국인 투자자들도 한몫했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대규모 중국 자금이 다양한 펀드를 통해 일본 증시로 유입됐다. 이 자금의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배에 달한다고 한다.

‘잃어버린 30년’의 원인이 된 부동산 시장도 회복세다. 부동산 버블이 터진 후 일본의 주택 가격은 평균 20~30%, 최대 60%까지 떨어져 2012년 저점을 찍었다. 현재는 도쿄의 주택 가격이 지난 2년간 상승해 일본 주택 시장에 투자한 업체들이 수익을 내고 있다. 월가뿐만 아니라 홍콩 대형 펀드, 캐나다 부동산 플랫폼 등이다. 알리바바의 마윈도 일본에서 부동산을 샀다고 한다. 2020년 이후 중국인들의 일본 부동산 투자는 2019년 이전에 비해 2~3배 증가했다.

중국의 경제 성장 전략은 과거 일본의 성장 모델을 세밀히 연구한 산물이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전후 재건을 시작한 일본은 부족한 자국 시장을 넘어서 해외 수출에 사활을 걸었다. 자국민의 소비를 억제하고 생산품을 최대한 외국에 내다 팔았다. 이렇게 해서 무역흑자와 높은 저축률을 달성했다.

이런 수출주도형 모델이 장기간 운영되자 상대국들은 무역 적자를 견딜 수 없게 됐고 무역 불균형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이미 경제 대국이 된 일본은 내수를 확대하는 기조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특히 부동산 개발과 투자에 주력했다. 너도나도 빚을 내 집을 사 모았다. 미래 소득을 현재로 앞당겨 사용하는 부채에 의존한 방식이다. 부동산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투자가 과잉되면서 디플레이션과 버블 붕괴에 빠졌다.

중국 정부는 미국이 엔화 절상을 통해 일본과의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은 것에 주목했다. 엔화 절상으로 수출 주도형 경제가 무너진 것이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를 가져온 근본 원인으로 판단했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은 중국은 위안화 환율 방어를 가장 중요한 경제 원칙 중 하나로 여겼다. 하지만 현재의 중국은 과거의 일본처럼 부동산 시장 포화와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일본과는 다른 전략을 중국에 대입했다고 분석한다. 시진핑의 ‘중국몽’을 위협으로 판단한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이민 카드는 관세전쟁이었다. 트럼프의 대 중국 책사인 중국계 미국인 마일스 위(중국명 위마오춘·余茂春)의 아이디어로 알려져 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정책을 ‘불신하되 검증하라(distrust but verify)’로 요약한 바 있다.

미중 무역전쟁 이후 미국 정계는 ZTE와 화웨이 제재 등 초당적으로 중국에 대한 적대 수위를 높였다. 중국이 외교 무대에서 서방과의 체제 경쟁 기조를 잇따라 천명함에 따라 미국과 주요 자유주의 국가들은 인권 문제 등을 내세워 각종 경제 제재로 중국을 압박했다. 이런 상황은 일본이 겪지 못한 것들이다. 결국 중국이 뚫어야 할 돌파구는 국내 수요를 활성화하는 것인데 이번 양회에서 구체적인 부양책을 발표하지 않자 국제 시장이 실망하는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깊이 얽혀 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영국과 미국은 남하하는 러시아 세력을 막기 위해 일본을 내세웠다. 이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일본의 러일 전쟁 승리도 없었을 것이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중국과 함께 일본을 물리쳤다. 전후 중국이 공산화되고 소련이 동아시아를 붉게 물들이려 하자 이번엔 일본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견제했다. 1970년대 초 소련 견제라는 공동 목표 아래 미국과 중국이 손을 잡자 일본의 전략적 가치는 떨어졌다. 대신 미국은 일본과 경제적으로 경쟁하기 시작했고 중국의 개혁개방을 도왔다. 이젠 중국·러시아를 대적하기 위해 또다시 일본의 힘을 빌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 일본과 중국 경제의 명암엔 이런 배후 사정이 개입돼 있다.

차이나랩 이충형 특임기자(중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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