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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女風’ 앞세운 사외이사…당국 압박에, ‘구색맞추기’ 비판도

중앙일보

입력

“최근 금융권 이사회가 변화의 첫발 뗐지만, 거수기 오명을 벗기엔 갈 길 멀다.”

국내 금융사 대상으로 주주 행동주의에 나선 얼라인파트너스의 이창환 대표의 얘기다. 이달 주주총회를 앞둔 금융권 이사회가 여풍(女風)으로 구성원은 다양해졌지만, 사외이사 핵심 기능인 전문성과 독립성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평가해서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올해 금융권 이사회는 규모를 키우고, 여성 사외이사 비중을 늘린 게 특징이다. 6일 은행권에 따르면 4대(KBㆍ신한ㆍ우리ㆍ하나금융) 금융지주는 전체 사외이사 수를 기존 30명에서 32명으로 확대했다. 하나금융이 사외이사를 9명으로 한명 추가했고, 우리금융도 기존 6명에서 7명으로 늘렸다. KB금융(7명)과 신한금융(9명)은 그대로다.

여성 사외이사도 늘렸다. 4대 금융지주의 사외이사 가운데 여성 비중은 23.3%(7명)에서 31.2%(10명)로 높아졌다. 여성 사외이사가 1명에 불과했던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이 2명으로 늘렸다. 신한금융도 3명으로 한 명 더 추가했다. 지방은행도 사외이사 교체 바람이 불었다. JB금융지주도 올해 사외이사를 7명에서 9명으로 확대했다.

금융지주가 이사회 개편을 위해 시동을 켠 데는 금융당국 영향이 크다. 지난해 말 금융감독원은 지배구조에 관한 30개 핵심 원칙을 담은 ‘은행지주ㆍ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 관행’을 내놨다. 특히 국내 은행의 이사 수는 평균 7~9명이고, 여성 이사의 비중은 약 12%로 글로벌 주요 은행 대비 적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또 관련 이행 계획(로드맵)은 이달 중순까지 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이번 사외이사 교체가 당국 압박에 따른 ‘구색 맞추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질적인 변화의 폭도 크지 않다. 사외이사 상당수가 연임됐기 때문이다. 금융지주 사외이사의 임기는 ‘2+1’ 방식으로 결정한다. 선임 후 첫 2년은 임기가 보장되고, 이후 1년씩 연임해 최장 6년까지(KB금융 5년) 맡을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사 사외이사는 겸직이 제한되고, 은행과의 거래 등 이해관계까지 따져야 한다”며 “기업보다 사외이사 영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감시ㆍ견제하기 위해선 전문성과 독립성 보장을 우선순위로 꼽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금융권의 사외이사 구성원은 교수ㆍ연구원 등 학계에 쏠려 “전문성이 미흡하다”는 평가다.

이번 신규 추천된 사외이사 포함해서 학계 출신(16명)은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창환 대표는 “경영진을 감시하고, 주주를 대신해서 경영 관련 의사 결정을 하려면 현장 경험이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며 “씨티, JP모건 등 글로벌 은행은 기업이나 금융업계 출신이 사외이사의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강조했다.

또 독립성을 강화해야만 ‘거수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KB금융을 비롯해 우리ㆍ하나금융의 지난해 지배구조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금융지주의 사외이사들이 지난해 이사회 결의 안건 중 반대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인 조명현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독립성 보장을 위해 금융지주의 사외이사 임기를 ‘3년 단임’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조 교수는 “선임 2년 뒤, 1년마다 연임되면 (사외이사가) 오히려 임기 연장에 발이 묶여 경영진의 눈치를 볼 수 있다”며 “3년 단임으로 임기가 확실히 보장되면 투명하게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올해 정부가 밸류업 새 장(場)을 연 만큼 이사회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상장사가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고, 주주가치 환원을 독려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외이사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보장이 선결 조건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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