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열기 속 잇단 시국사건|사건·사고로 얼룩진 90년을 되돌아본다|물꼬 트는 남북교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올해에는 유난히 각종 사건·사고들이 많았다. 새해 벽두 주택가 연쇄방화사건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민생치안은 잇따른 유괴살해·강도살인사건에다 강도·강간 등 가정파괴범·조직폭력배까지 설쳐대는 바람에 대통령이 범죄와의 전쟁까지 선포해야 했다. 이런 가운데서 9월에는 대홍수가 경기·충청지방을 강타, 국민들을 가슴아프게 했다. 한편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져 비록 범민족대회는 무산됐지만 남북고위급회담·통일음악회 등으로 남북교류의 물꼬를 튼 해이기도 했다. 【편집자주】
올 여름 전국을 통일열기로 가득 차게 했던 범민족대회는 비록 무산됐지만 이후 남북고위급회담·통일축구·송년통일음악회 등 남북교류활성화에「물꼬」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특히 7월 26일 서울에서 갖기로 했던 범민족대회 2차 예비실무회담은 48년 김구 선생이 북의 대 연석회의에 참가한 이후 42년만에 처음 갖게된 민간 급의 남북대화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회담장소와 숙소로 인터컨티넨탈호텔을 고집한 우리측 정부와 아카데미하우스를 내세운 전민련의 갈등, 그리고 이 갈등에서 남행 포기의 명분을 찾아낸 북측의 거부로 회담은 무산되고 말았다.
범민족대회는 전민련의 전신인 민통련·민청련 등 21개 재야단체가 소년 서울올림픽기간 중「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를 개최할 것을 주장한 이래 재야 쪽에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노태우 대통령의 7·20남북 대 교류 선언으로 단숨에 가시화 된 범민족대회는 전향적인 대북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정부와 대회를 성사시켜 89년 공안정국이후 침체된 통일운동의 열기를 다시 고조시켜야할 전민련의 동상이몽이 가져온 합작품.
그러나 회담접촉 과정에서 전민련 측은 정부 차원이 아닌 최초의 민간차원의 자율적 대회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정부간섭의「선례」를 배제키 위해 굳이 아카데미하우스를 고집한 반면 정부측은 회담성사 직전 새로운 카드를 제시, 회담무산의 원인을 제공했다.
북측 또한 뜻밖에 우리 정부가 예비회담참여를 허용하고 전민련마저 우익·보수단체의 참가에 동의하자 당초의 구도자체에 차질을 빚어 당황하다 회담장소를 둘러싼 우리측의 갈등에서 포기의 명분을 찾은 것.
이로써 범민족대회는 8월 13일 남의 연세대와 북의 백두산 천지에서 각각「반쪽대회」로 치러졌고 광복절인 15일 판문점 북측지역에 모인 북한과 해외동포대표 등 1천여 명은 남북군축실현·연방제통일 등 6개항의 범민족대회 결의문을 공포했다.
특히 작가 황석영씨는 13일 천지에서의 백두∼한라 출정식에서 남측대표로 연설, 눈길을 끌었다. 같은 달 4일부터 나흘간 진행된 방북신청 접수창구에는 무려 5만여 명이 몰려 이산가족의 아픔과 통일 열기를 실감케 했으나 북측이 범민족대회의 방해를 구실로 명단접수를 거부, 무산되고 말았다.
한편 범민족대회의 무산으로 성사여부가 불투명했던 남북고위급회담이 9월 4∼7일 사흘간 서울에서 열려 남북한 총리가 분단 이후 첫 만남을 가져 남북교류에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했다.
고위급회담성사로 고조된 통일무드는 10∼11월의 남북통일축구와 범 민족음악축제 등으로 계속 이어져 통일열기를 확산시켜 나갔다. <최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