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비핵화 중간단계' 제안엔 반응 않고…김정은, 소총 들고 "실전훈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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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일 북한군 서부지구 중요작전훈련기지를 방문해 훈련을 지도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일 북한군 서부지구 중요작전훈련기지를 방문해 훈련을 지도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 훈련장을 찾아 '전쟁준비'를 또 강조하며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러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한국-쿠바 수교의 충격파를 상쇄하기 위해 일·북 접촉, 서방 외교 사절의 평양 복귀 추진 등 외교적 노림수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탐색전 양상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잇달아 북한과 비핵화 협상에서 '중간 단계 조치'(interim steps)를 고려할 수 있다며 대화 의지를 밝힌 것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노동신문은 7일 김정은이 전날 북한군 서부지구 중요 작전훈련 기지를 방문해 시설을 돌아보고, 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적들의 항시적인 위협을 압도적인 힘으로 견제하고 사소한 전쟁 도발 기도도 철저히 제압"하기 위해서는 "전투능력을 비약적으로 제고하기 위한 실전훈련을 끊임없이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전쟁준비 강화의 새로운 전성기를 힘있게 열어나갈 데 대해 특별히 강조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김정은은 쌍안경으로 훈련 상황을 들여다보고, 직접 소총을 들어 사격 자세를 취하는 등 적극적으로 장병들과 소통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또 훈련에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면서 장병들과 기념사진도 촬영했다. 군 본연의 임무인 전투태세 완비 지시는 물론, 최근 강조하는 지방경제 건설에 병력 동원을 염두에 두고 군 장병들의 사기를 진작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일 북한군 서부지구 중요작전훈련기지를 방문해 훈련에 참가한 장병들을 격려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일 북한군 서부지구 중요작전훈련기지를 방문해 훈련에 참가한 장병들을 격려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훈련 장소는 서부전선 인근 전방부대로 추정되며, 신문이 공개한 사진을 토대로 볼 때 최전방 감시초소(GP) 점령 및 일반전초(GOP) 돌파 등의 훈련을 진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의 군사분야 개인 교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박정천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수행했고, 강순남 국방상과 이영길 총참모장 등이 현장에서 영접했다. 군 수뇌부 사이에선 특수작전군 사령관을 지낸 김영복 부총참모장의 모습도 포착됐다. 이를 두고 군 안팎에선 북한군이 접경지역 인근에서 모종의 도발을 구상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번 훈련은 기본적으로 한·미가 4일부터 시작한 전반기 정례 연합훈련인 '자유의 방패(프리덤실드·FS)에 대한 맞대응 성격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전쟁 준비'를 반복적으로 강조하지만, 실질적인 전쟁 수행 의지나 능력은 없어 보인다는 게 정부 안팎의 평가다. 러시아에 이미 포탄을 수백만발 공급하는 등 군 물자를 수출에 쏟아붓는 데다 병력은 지방경제 재건을 위한 공장 건설 현장에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이어진 포격, 순항미사일 발사 등 다양한 군사 도발이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도 이런 평가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다만 북한이 한·미의 선거 국면을 노려 '판 흔들기'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전제조건 없는 대화'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이렇다 할 대북 제안을 한 적이 없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간 단계를 거론하며 구체적 대화 의지를 밝힌 게 추동 요인이 될 우려도 있다. 아직은 북한의 반응은 없지만, 러시아와의 불법 무기 거래, 한-쿠바 수교 등으로 외교무대에서 고립된 상황을 타개하고 오는 11월 미국 대선 정국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군사 도발과 협상 카드를 모두 들고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정은이 군 훈련장을 방문해 전쟁준비를 강조했지만, 장병들의 사기 진작에 방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며 "산적한 외교현안을 염두에 두고 수위를 조절하면서 상황을 관리하려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이 한·미의 선거 국면을 틈타 군사도발과 외교적 협상 카드를 접목한 화전 양면 전술을 펼칠 가능성도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앙일보-CSIS 포럼 2024'가 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렸다. 이날 미라 랩-후퍼 미 백악관 NSC 겸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화상으로 특별담화를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중앙일보-CSIS 포럼 2024'가 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렸다. 이날 미라 랩-후퍼 미 백악관 NSC 겸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화상으로 특별담화를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앞서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지난 4일 '중앙일보-CSIS 포럼 2024'에서 "현재 한반도 상황을 고려할 때 위협 감소(threat reduction)를 위해 북한과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전 세계 지역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박 미 국무부 대북특별부대표도 지난 5일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비핵화로 향하는 과정에 '중간 단계 조치'(interim steps)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같은 입장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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